| 한글 | 중관 |
|---|---|
| 한자 | 中觀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중도, 공관, 삼제, 삼관, 중관파 |
여러 사물을 비유비무(非有非無), 불상부단(不常不斷) 등의 중도라고 관찰하는 것
중관학파의 개조인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년경)는 『중송(中頌)』 제24장 제18송에서 “연기인 것, 그것을 공성이라고 우리들은 부른다. 그것은 가명(假名)이며, 그것이야말로 중도이다.”라고 말했다. 이 게송에서 중관(中觀)이라는 용어는 발견되지 않지만 결국 용수는 중관을 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서 연기인 여러 사물을 중도라고 관찰해야 하는 이유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용수에 따르면 일체법은 연(緣)에 의존해서 발생한다. 그런데 연기는 자성의 개념과 어긋나기 때문에 연기인 사물은 자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성을 결여한 여러 사물을 공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용수는 공을 ‘자성의 결여, 자성의 비존재’를 의미하는 말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연기인 사물은 무자성이므로 존재라거나 비존재라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연에 따라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진실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연이 있을 때만 존재하고 연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라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수는 중도와 공을 동일한 의미로 간주했으므로 그에게 중관은 공관(空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불타는 『숫타니파타(Suttanipāta)』 제1119 게송에서 “항상 마음으로 염(念)해서, (어떤 사물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견해를 버리고, 세간을 공(空)이라고 관하라. 그러면 그는 죽음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게 세간을 보는 사람을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는데, 이로부터 용수의 중관은 불타의 중도설과 공관을 계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는 『중송』 제24장 제18송을 공(空), 가(假), 중(中)의 삼제(三諦)를 설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이 해석에 따라서 중관을 공관(空觀), 가관(假觀)과 함께 사물을 파악하는 세 가지 시점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으로 간주하였다.
또 중관파라고 하는 호칭은 ‘중도를 공부하는 자, 중도를 따르는 자’를 의미하는 마드햐미카(mādhyamika)를 번역한 것인데, 그 호칭은 길장(吉藏, 549~623)이 『중송』을 『중관론(中觀論)』이라고 불렀고, 천태 지의가 중관을 중시하여 삼관(三觀)을 세웠으며, 당나라의 의정(義淨, 635~713)이 7세기 후반 인도의 대승불교에 중관(中觀)과 유가(瑜伽)의 둘이 있다고 전한 사실에 따른 것이다.
· 집필자 : 남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