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죽음 |
|---|---|
| 한자 | 死 |
| 산스크리트어 | maraṇa |
| 팔리어 | maraṇ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삼계, 육도윤회, 삼종외도설, 업보, 촉, 현상 |
고통의 현상이면서 인과응보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준점이 되는 원리
불교에서 죽음은 고통의 현상이면서 인과응보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기준점이 되는 원리이다. 통상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생명체의 생명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된 상태, 즉 생물학적 죽음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불교에서 설명하는 죽음은 그 이상의 함의를 가진다. 왜냐하면 죽음에 관한 이해와 해법은 인과율의 적용과 윤리 규범으로 이어져 사회제도, 종교, 가치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붓다 당시 죽음에 관한 해법은 바라문(婆羅門)과 유물론자들의 대립 속에서 논의되었다. 바라문은 사후(死後)에도 상주(常住)하여 존재하는 아트만의 존재를 주장하고, 유물론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대(四大)의 요소로 환원되기 때문에 단멸(斷滅)을 주장한다. 또한 자이나교는 전생의 쾌락과 죄업에 의한 업이 있을 경우 윤회하지만, 고행을 통해 업이 소멸한다면 영혼의 독존(獨存, kevala)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붓다는 죽음에 관한 이 해법들이 결국 ‘창조신이 원인[尊祐作因]’, ‘전생의 업이 원인[宿作因]’,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음[無因無緣]’ 중 어느 하나에 귀결하게 되어 우리의 의도나 동기, 책임과 규범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만약 도둑질, 거짓말 등의 악업을 행하고 그 원인을 전생의 업이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의도나 동기, 책임과 규범을 올바르게 성립시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탐구된 존재 개념은 종교나 사상에 영향을 미쳐 제도나 가치를 제약한다. 예를 들어 바라문은 현실이나 윤회의 세계를 고통의 영역으로, 브라만과 아트만의 합일을 환희의 영역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 존재 개념에 기반을 둔 윤회론과 업보론을 통해 사성계급의 차별을 정당화하였다. 유물론자들은 사대의 물질적 요소로부터 초월적 존재를 거부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세속의 쾌락 외에 다른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자이나교는 전생의 업을 소멸시켜 영혼의 독존을 얻기 위해 고행을 제시한다. 사문과 바라문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을 초월적 세계, 쾌락주의, 고행주의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에 따르면, 이것들은 행고성(行苦性), 괴고성(壞苦性), 고고성(苦苦性)의 특성을 지니며 오히려 고통에 예속된다. 죽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고통의 해법과 인과 모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붓다는 죽음을 삼계(三界)에서 업에 따른 과보로 설명한다(DN. II, 55-71쪽). 경전에서 죽음은 “각각 모든 중생(衆生, satta)들의 무리에서 중생들의 사라짐, 타계한 상태, 오온의 파멸 등”으로 설명된다(SN. II, 2-3쪽). 중생들의 무리나 중생들이 머무는 곳은 칠식주이처(七識住二處)로서 삼계이다. 삼계는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이다. 욕계는 지옥(地獄), 축생도(畜生道), 아귀계(餓鬼界), 인간, 아수라(阿修羅), 천신(天神)의 육도(六道)이다(MN. I, 73쪽). 중생의 의식은 환경과 상호작용 속에서 촉발(觸)되고 각 업(業)에 따른 과보로서 삼계 중 어느 하나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삼계는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상태를 조사하고 분류하여 설명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아귀, 아수라, 축생도는 탐·진·치의 속성을 상징하고 지옥은 고통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탐욕의 업을 짓는다면 아귀계에 머무는 과보를 받고, 다시 어리석음의 업을 짓는다면 이전의 의식이 사라지거나 죽고 축생도에 머무는 과보를 받는 것이다. 색계와 무색계는 선정(禪定)을 통해 도달하는 고양된 의식이다. 이러한 삼계의 생사윤회는 동기적이면서 결과적인 마음의 인과응보를 제시한다. 죽음을 멸한 출세간은 사성제, 팔정도, 사념처, 관찰명상 등의 이해와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 집필자 : 우동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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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몸은 즐거우나 마음이 즐겁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는가? 복을 지은 범부는 의복‧음식‧침구‧의약, 이 네 가지를 공양(供養)받으며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아귀(餓鬼)‧축생(畜生)‧지옥(地獄)의 세계와 그 밖의 나쁜 세계를 면하지 못한다. 이런 이를 몸은 즐거우나 마음이 즐겁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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