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종지

한글종지
한자宗旨
유형용어
어느 한 경전이나 종파의 핵심적인 취지와 교의
종(宗), 종취(宗趣), 종요(宗要), 종체(宗體), 종승(宗乘), 종교(宗敎), 현지(玄旨), 지귀(旨歸) 등이라고도 한다. 근본 교설과 특유의 수행법 등을 포괄한다. 『임제록(臨濟錄)』에는 “붙잡고 곧장 써먹을 수 있으나 이름자를 붙이지 못하는 것을 현지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현지는 깊고 미묘한 종지, 종지의 근본적 뜻을 의미한다. 지귀는 부처님의 교설이나 글의 뜻이 돌아가는 근원을 뜻한다. 달마대사가 전한 불법의 근본적 뜻은 서래종지(西來宗旨)라고 한다. 『화엄경행원품소초(華嚴經行願品疏鈔)』 권2에는 “종(宗)은 존중하다는 뜻이다. 말이나 마음으로 높인다는 뜻이다. 지(旨)는 지취이며 종이 돌아가는 곳을 이른다.”, 『영가선종집주(永嘉禪宗集註)』 권하에는 “석벽(石壁)이 말했다. 종지의 본체는 하나이나 다른 이름을 세운 것일 뿐이다. 마치 거울과 빛처럼 두 가지 이름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불교 경전과 논서 등의 주요 취지를 종지라고 한다. 경전이나 논서를 해석할 때도 그 취지를 종지 또는 종취라는 말로 많이 표현한다. 『금강반야경의천친보살논찬약석진본의기(金剛般若經依天親菩薩論贊略釋秦本義記)』에는 “이 경은 앞에서 지혜를 밝혔다. 반야를 종지로 삼기 때문이다.”, 『우란분경소효형초(盂蘭盆經疏孝衡鈔)』 권상에는 “종지에 대해 『법원(法苑)』에서는 종은 존숭하다, 지는 취지가 궁극적인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이 경은 효순(孝順)하여 고통을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을 종지로 한다.”라고 하였다. 『법화현론(法華玄論)』 권2의 변경종지(辨經宗旨)에는 “이 경은 무엇을 종지로 삼느냐?”라는 물음에 “설하는 자가 대단히 많지만 간략히 말하면 13가(家)가 있다.”라고 답한 예가 보인다. 선종에서는 선의 요지를 종지라고 하며 종풍(宗風), 종취(宗趣), 종승(宗乘)이라고도 한다. 선가(禪家)는 선종 이외의 교파인 교가(敎家)와 차이점이 있는데, 선가를 선문(禪門)이나 종문(宗門)이라 하고, 교가는 교문(敎門)이라고 한다. 선문의 종지는 경전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불법의 본래 취지로 삼는다. 교문의 가르침에 대해 이 선문의 본래 취지를 특별히 종지라고 한다.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 등 오가(五家) 각 종파의 특색을 종지라 하고, 개개 선사 특유의 선법이나 그들의 언행에서 보이는 핵심 요체를 종지라 표현하기도 한다. 『벽암록(碧巖錄)』 15칙 평창(評唱)에는 “옛날 영산회상에 사부대중이 운집했을 때 부처님께서 꽃을 집어 들자 가섭만이 홀로 파안미소를 지었고, 나머지 대중들은 그것이 무슨 종지인지 몰랐다.”, 『성유식론음향보유과(成唯識論音響補遺科)』 「서(序)」에는 “처음 달마조사가 중국에 와서 다만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종지로 삼았으니 이를 성종(性宗)이라 한다.”,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925칙 설화에는 “‘조계의 뜻’이란 교외에 별도로 전한[敎外別傳] 종지[別傳宗旨]를 가리킨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내가 입적한 뒤 20여 년이 지나면 삿된 법이 분란을 일으켜 우리의 종지를 미혹시킬 것이다. 그때 어떤 사람이 나타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시비를 확정하여 종지를 굳건히 세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바른 법이니 가사는 전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였다.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에는 “임제종의 종지를 읊은 송: 밝게 드러난 손님과 주인이 뚜렷하게 나뉘니, 무위진인(無位眞人)조차도 가까이 다가설 수 없도다.”, 『선문염송설화』 553칙 설화에는 “마치 흥화(興化)가 삼성(三聖)의 회하에서 두 번의 할(喝)을 써먹고 또 대각(大覺)의 회하에 이르러 그에게 가사가 벗겨진 채 매서운 일돈방(一頓棒)을 얻어맞고서야 임제(臨濟)의 종지를 깨닫고 적손(嫡孫)이 되었던 것과 같다.”, 『앙산혜적어록(仰山慧寂語錄)』에는 “여러 제자들이여, 똑바로 보고 다시 우러러 살펴라. 입은 둘이나 혀는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종지이다.”라고 하였다. 『만법귀심록(萬法歸心錄)』 「서」에는 “이제 조원(祖源) 선사의 어록을 보니 만법귀심을 종지로 삼고 있다. 어찌 우리 유자(儒子)들의 뜻과 서로 부합하겠는가.”,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 권11에는 “설두 중현(雪竇重顯)이 일찍이 대양(大陽)의 회중에서 전객(典客) 소임을 맡아 볼 때 어떤 객승과 조주(趙州)의 종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다.”, 『보봉어록(寶峰語錄)』에는 “임제가 내지른 일할(一喝)은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일할을 내질렀거늘 어째서 할로서의 작용을 하지 않는다 하는가? 그 근본적인 뜻[宗旨]은 무엇인가? 그 종지란 모든 부처와 조사가 교 밖에 별도로 전한 것[敎外別傳]은 문자나 언구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보도독어록(宗寶道獨語錄)』 권1에는 “내가 곳곳 어디에서나 즉심즉불(卽心卽佛)을 제기하는 까닭은 바로 즉심즉불을 종지로 삼기 때문이다.”,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 권중에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는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다. 가령 언구에 얽매여 이해하면 바로 종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것은 언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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