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장좌불와 |
|---|---|
| 한자 | 長坐不臥 |
| 유형 | 용어 |
눕지 않고 오래 앉아서 참선하는 것
벽이나 의자에 기대거나 자리에 눕지 않고 오래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일컫는다. 수행력의 방증으로 여겨지며 행주좌와(行住坐臥)나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구애되지 않고 늘 수행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화두를 참구(參究)할 때 일여(一如)라고 하여 한결같음을 강조한다.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를 성취해야 한다. 동정일여는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한결같이 화두(話頭)가 들리는 것이고, 몽중일여는 꿈에서도 화두가 잡히는 상태이다. 오매일여는 깨어 있을 때나 삼매(三昧)에 들었을 때나 한결같이 화두를 들었음을 뜻한다. 항상 화두에 몰입하여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가 순일하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장좌불와의 정진인데, 일시적 용맹정진의 수단일 수는 있지만 항시적 방법으로는 의혹이 많다. 육조 혜능부터 좌선이 비판되면서 장좌불와는 그 비판의 정점에 있었고, 그 뒤로 일상에 활발하게 선법(禪法)을 구현하고 평상심의 도를 강조하면서 장좌불와는 주류에서 물러난 일부의 방법으로 남았다. 그 뒤 석상 경저(石霜慶諸, 807~888) 문하에 장좌불와가 유행하여 입적할 때 좌탈(坐脫)이 많았고 심지어 서서 입적하는 입망(立亡)도 적지 않다고 하였으나 모두 주도적 흐름은 아니었다. 등은봉(鄧隱峰) 선사는 좌탈과 입망이 삿된 도술 정도라는 것을 알리고자 거꾸로 서서 입적하는 도탈(倒脫)을 시현함으로써 그 풍조를 비웃었다. 이는 육조를 거쳐 마조(馬祖)에 이르는 좌선 비판의 전통을 등은봉이 고스란히 몸으로 드러내 보인 선종사의 상징적 장면이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북종 신수(神秀)의 장좌불와를 비판하면서 “마음을 멈추고 고요를 관하는 수행은 병이요, 선이 아니다. 오랫동안 눕지 않고 앉아 몸을 구속한들 이치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나의 게송 한 수를 들어 보라. ‘살아서는 앉아만 있고 눕지 않더니, 죽어서는 눕고 나서 앉지 않는구나. 한 덩이 냄새나는 뼈에, 무슨 까닭으로 공과를 세우려 하는가?’”라고 신랄하게 내치고 있다. 또한 마조는 좌선에 몰두하다 남악 회양(南嶽懷讓)에게 호된 질책을 받으면서 좌선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지눌(知訥)이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에서 “장좌불와하고 하루 한 끼 먹으며 대장경을 전독(轉讀)하고 대장경을 다 읽고, 온갖 고행을 닦지만,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알면 항하의 모래처럼 많은 법문과 묘한 이치를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은 근본 이치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장좌불와라는 외형에 집착하는 선법을 비판한 것이며, 육조 이후의 정통적인 관점에 따른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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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불와(長坐不臥)하였으니 어찌 옆구리를 땅에 대어 편안하게 잠을 자는 자리가 있겠으며 지팡이 짚고 산 밖을 나선 적이 없으니 어찌 술집인들 들어간 적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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