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일체법무자성성취 |
|---|---|
| 한자 | 一切法無自性成就 |
| 산스크리트어 | niḥsvabhāva-siddhi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자성, 반야바라밀, 희론, 분별, 가설 |
모든 현상에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체득하는 것
자성(自性)은 산스크리트 스바브하바(svabhāva)의 번역으로서 자신의 본질, 본성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자성 혹은 본질을 전제하는 사유는 허구적인 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 때문에 실체화의 파국을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실체적 사고는 언어 활동의 결과로 발생한다. 특히 우리의 생각은 마치 가위와 같아서 이 세계를 자의적으로 오려서 갖가지 개념을 만들어 낸다. 또한 그렇게 오려진 개념들을 주워 모아 다양한 판단을 구성한다. 이런 까닭에 개념을 만드는 과정은 인식 내적인 생각의 가위질이며, 이를 분별(分別)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사물의 경계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대상 곧 산, 숲, 들과 같은 것들은 경계나 구분이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의 일상 언어는 그것들을 양화(量化)하거나 범주화한다. 이와 같은 양화와 범주화에 따른 표현은 다음과 같다. ‘산모퉁이’, ‘우리 동네에는 작은 숲이 많다.’, ‘그 들판에는 울타리가 있다.’ 즉 지시하는 것이 불분명한 외부 대상을 구획하거나 범주화하는 우리의 양상은 우리의 활동, 정서, 생각 등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감정이나 일상 활동처럼 대상화하기 불분명한 우리의 경험도 덩어리로 묶거나 그것을 양화하는데, 이러한 언어 사고의 경향성이 우리의 경험의 내용을 실재하는 것처럼 존재화하는 것이다.
중관학파는 우리의 사유 과정이 분할하거나 구획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도 구분하고 양화한다는 점을 인간 삶의 한 양상으로 인정한다. 대신 스스로의 존재성을 갖춘 대상은 실재하지 않으나, 오직 언어의 기능적 특징인 실재성[假說, prajñaptsat]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언어 활동은 존재화할 수 없는 것조차도 지시 가능한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적 실재들을 통해서만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고, 세계 안에서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중관학파에 따르면, 희론(戲論, prapañca)은 우리의 사고 활동을 성립하게 하는 원초적인 언어 활동이며, 또한 언어적 허구 내지 언어에 의해 구축된 희론과 분별이 인간 존재의 미혹을 일으킨다.
불교는 중생고의 주된 원인을 번뇌로 특징짓는 교리의 특성상, 번뇌의 내용과 구조를 성찰하는 수행 전통을 완성하였다.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번뇌란 언어 사고에 의해 구축된 희론과 분별일 뿐만 아니라, 이를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는 경향성까지 포함한다. 불교는 중생고의 주된 원인을 번뇌로 특징짓는 교리의 특성상, 번뇌의 내용과 구조를 성찰하는 수행 전통을 완성했다.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번뇌란 언어 사고에 의해 구축된 희론과 분별일 뿐만 아니라, 이를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는 경향성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번뇌를 제거하여 해탈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언어적으로만 실재하는 것을 실체로 인식하는 경향성을 극복해야 한다. 즉 우리를 속박하는 분별과 집착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모든 현상의 비실체적 속성을 간파해야 하며, 이를 성취했을 때 일체 현상의 무자성을 통달하였다고 한다.
· 집필자 : 김현구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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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아, 보살마하살이 만일 이와 같이 희론이 없는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수 있다면 온갖 법에 제 성품이 없음(一切法無自性)을 통달하기 때문에 모두 희론이 없어 곧 보살의 정성이생(正性離生)에 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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