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이제 |
|---|---|
| 한자 | 二諦 |
| 산스크리트어 | dva-satya |
| 팔리어 | dvi-sacca |
| 티베트어 | bden pa gnis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승의제, 세속제, 사성제, 공, 요의설, 불요의설, 열반 |
승의제(勝義諦)와 세속제(世俗諦)라는 두 가지의 진실
이제(二諦) 가운데 승의제(勝義諦, paramārtha-satya)는 진제(眞諦), 제일의제(第一義諦)라고도 하며, 세속제(世俗諦, saṃvṛti-satya)는 속제(俗諦), 세제(世諦)라고도 한다. 여기서 파람아르타(paramārtha)는 ‘최고의 의미, 최고의 대상’이라는 뜻이고, 상브리티(saṃvṛti)는 ‘일반적인 것, 관습적인 것, 제한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티야(satya)는 ‘진실, 실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승의제는 ‘최고의 진실, 최고의 실재’라는 의미가 되고, 세속제는 ‘세속의 진실, 세속의 실재’라는 의미가 된다.
부파불교의 논사들은 승의제와 세속제에 대하여 다양한 학설들을 주장하였다.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에 따르면 부파불교의 어떤 논사는 고집멸도의 사성제 가운데 고제와 집제는 세속제이고 멸제와 도제는 승의제라고 주장하였는데, 고제와 집제가 세속제인 이유는 남녀(男女)와 물병 등 세간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세간의 사물들은 모두 고제와 집제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이고, 멸제와 도제가 승의제인 이유는 여러 가지 출세간의 진실과 공덕은 모두 멸제와 도제 가운데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 어떤 논사는 사성제 가운데 고제, 집제, 멸제의 세 가지는 세속제이고 도제만이 승의제라고 주장하였는데, 고제와 집제가 세속제인 이유는 앞의 주장과 같고 멸제도 세속제인 이유는 불타가 멸제를 성(城)과 같고 궁(宮)과 같고 피안(彼岸)과 같다고 설하여, 멸제 가운데 세속을 시설하였기 때문이며, 도제 가운데에는 그와 같은 세속의 시설이 없기 때문에 오직 도제만이 승의제라고 주장하였다.
또 『구사론(俱舍論)』에 따르면 깨어지거나 부서짐으로써, 혹은 어떤 사물에서 어떤 법을 배제함으로써, 그 사물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면 그것은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면 그것은 항아리, 옷[衣], 물[水], 불[火] 등과 같다. 그러나 깨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았을 때, 세간의 명칭을 가지고 그것을 시설하면 그것을 세속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세속의 이치에 따라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진실이고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세속제라고 부른다.
만약 그것과 다르면 승의제이다. 즉 어떤 사물이 부서져도 없어지지 않거나, 어떤 사물에서 어떤 법을 배제해도 그에 대한 인식이 남아 있다면 그 사물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승의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색(色)이나 수(受) 등과 같다. 그리고 승의의 이치에 따라 그것들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승의제라고 부른다. 요컨대 『구사론』에서 승의제는 여러 사물의 궁극적 원인인 여러 법들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진실을 의미하고, 세속제는 실체인 여러 법을 연으로 해서 발생한 여러 복합적인 사물들이 명칭으로서 존재한다는 진실을 의미한다.
한편 중관학파는 이제를 열반으로 가는 단계적 가르침으로 간주한다. 중관학파에 따르면 불교에서 이제를 설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불타가 깨달은 진실은 언어를 통해서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불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깨달은 진실을 중생들에게 설했다. 왜냐하면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승의제는 부처님이 깨달은 최고의 진실을 의미하고, 세속제는 언어로 설해진 진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관학파에 따르면 세속제에는 다시 불요의설(不了義說)과 요의설(了義說)이 있다고 한다. 불요의설이란 불도에 입문(入門)하도록 하기 위해서 설해진 가르침을 의미하고, 요의설이란 해탈을 얻도록 하기 위해 설해진 가르침을 의미한다. 즉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 진실을 있는 그대로 설하지 않고 쉬운 가르침부터 설하여 불도에 입문하도록 한 후에 최고의 진실을 설하여 해탈을 얻도록 한다는 것이다.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년경)는 『중송(中頌)』 제24장에서 “세간의 언설에 의지하지 않으면 승의는 가르쳐질 수 없다. 승의에 도달하지 않으면 열반은 증득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즉 세속제에 의지해서 승의제를 깨닫게 되고 승의제에 도달함으로써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기, 사성제 등의 불요의설을 설하여 불도에 입문하도록 한 뒤, 무자성, 공, 중도, 무생(無生) 등의 요의설을 설하여 승의제를 깨닫도록 한다. 그리고 수행자는 승의제를 반복적으로 닦아 그것을 완전하게 깨달음으로써 마침내 갈애와 집착을 떠나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 집필자 : 남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