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유심 |
|---|---|
| 한자 | 唯心 |
| 산스크리트어 | citta-mātr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유식, 일체유심조 |
일체 모든 것은 다만 마음에서 나왔으며,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
일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왔을 뿐이고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마음이 만유의 본체로서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이다. 60권본 『화엄경(華嚴經)』 권25 「십지품(十地品)」(T9, 558c10)에서 “삼계는 허망하니 오직 일심이 만든 것이다(三界虛妄 但是心作).”라고 한 것은 이 뜻이다. 중생들이 생존하는 미혹의 세계인 삼계는 모두 일심이 변하여 지은[變作] 것이므로 마음 밖에 실재하는 무엇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는 오직 일심뿐이며,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있지 않다(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라고 한 것이니 이것이 삼계유심이다. 이 문구는 유심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용례로서, 화엄 사상과 유식 사상의 전개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대승에서는 ‘심(心)’을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경우와 여래장이라고 하는 경우의 두 가지 견해가 있다.
80권본 『화엄경』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T10, 102a21-b1) 각림(覺林)보살의 게송에서,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려 내며 오온(五蘊)이 모두 마음 따라 생겨나고 무슨 법이든 짓지 못함이 없네. 마음과 같아 부처도 그러하며 부처와 같아 중생도 그러하니 부처와 마음 그 체성(體性)은 모두 다함이 없네.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능히 불사(佛事)를 지어 자재함이 일찍이 없던 일이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할지니,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게송은 유심게(唯心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음을 화가에 비유하고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모든 세간을 짓는 줄을 아는 사람은 부처를 보고 부처의 참 성품을 알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80권 『화엄경』의 이 게송에서 유래하였다.
80권 『화엄경』의 이 게송은 60권 『화엄경』(T9, 465c24-29)에서는 여래림(如來林)보살의 게송으로 되어 있다. “비유하면 그림 그리는 화가가 그리는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일체법의 성품도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하네. 마음은 그림 그리는 화가와 같아서 온갖 존재[五陰]들을 그려 내니 일체 세계 가운데 짓지 못하는 것이 없네. 마음과 같아서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아서 중생도 그러하니,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네.”라고 하였다. 화엄에서는 마음이 능히 만드는 자[能造]라 하고, 부처와 중생은 만들어지는 것[所造]이라고 한다. 마음이 미혹되면 중생이고 깨달으면 부처이나 어느 경우든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연기에는 염오됨과 청정함의 차별이 있지만 마음의 체(體)는 동일하므로 마음과 중생과 부처는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천태종에서는 산가파(山家派)와 산외파(山外派)가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산가파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세 법은 모두 동일한 삼천(三千)의 법이기 때문에 마음만이 능조(能造)·능구(能具)가 아니고, 부처와 중생도 능조·능구이며, 부처와 중생만이 소조(所造)·소구(所具)가 아니고 마음도 또한 소조·소구라 하여 세 법이 차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산외파에서는 마음을 능조라 하고 부처와 중생을 소조라 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법상종에서는 이것을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의미로 풀이하고, 진언종에서는 부처와 중생의 삼밀(三密)이 평등하다는 증문(證文)으로 삼는다. 화엄종의 십현문(十玄門) 중 하나인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은 여래장 진여인 일심이 현현(顯現)하여 모든 것이 성립해 있음을 말한다.
· 집필자 : 박서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