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위파사나

한글위파사나
한자
산스크리트어vipaśyanā
팔리어vipassanā
유형용어
키워드지관, 사마타, 관찰명상, 사념처, 팔정도
메타적 방식에서 자신의 경험 현상을 관찰하여 탐·진·치를 제거하는 관찰명상법
메타적 방식에서 자신의 경험 현상을 관찰하여 탐(貪)·진(瞋)·치(癡)를 제거하는 관찰명상법이다. 산스크리트어 위파사나(vipaśyanā)는 분리를 뜻하는 접두어 ‘위(vi-)’와 ‘보다’를 뜻하는 어근 ‘paś’에서 파생한 단어로 ‘분리하여 본다’, ‘관찰한다’라는 의미이다. 일상적으로 본다는 것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위파사나는 ‘대상을 아는 앎’을 포함하여 처(處), 계(界), 온(蘊)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관찰하여 아는 것이다. 즉 자신의 경험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로 관찰하여 탐·진·치가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불교 고유의 수행법이다. 붓다 당시 수행법은 올바른 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당시 수행법은 아트만(ātman, 我)의 존재를 추구한 바라문(婆羅門)의 선정주의, 세속의 쾌락을 탐닉한 유물론자들의 쾌락주의, 영혼의 독존을 추구한 자이나교(Jaina)의 고행주의 등이 있었다. 그러나 선정주의는 수단이나 방법으로 선택한 선정이 정신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그 상태로 들어가야 하는 한계, 즉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문제가 있었다. 쾌락주의는 쾌락이 지속되지 않는 때 고통으로 변하게 되는 한계[壞苦性]가 있었다. 고행주의는 그 자체로 행복이 아닐 뿐 아니라 업과 고행의 양을 측정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붓다는 고행과 쾌락의 양극단을 벗어나 고락중도로서 팔정도(八正道)를 실천하여 고통이 소멸된 열반(涅槃)을 제시한다. 위파사나는 법에 관한 집(集)·멸(滅)을 관찰하는 것으로 팔정도와 연계된다(MN. III, 25-93쪽).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이다. 선정은 집중을 통해 정신적 평온에 도달하여 머물려고 하는 것으로, 이는 자아상의 근거가 된다. 그에 반해 팔정도에서 정정은 정견, 정정진, 정념의 세 가지 법이 한 몸처럼 움직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을 둘러싸면서 일곱 가지 법이 하나로 통일된 올바른 선정이다. 특히 정견은 사성제에 관한 앎으로서 경험의 발생과 소멸을 관찰하는 견해를 갖추게 하고, 정념은 몸, 느낌, 마음, 법의 영역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각하게 한다. 정견, 정념의 원리는 위파사나의 내용과 방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파사나는 경험의 현상을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로 관찰하여 탐·진·치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다(Paṭis. I, 98쪽). 범부는 탐·진·치에 기반을 두어 영속한 것[常]을 행복[樂]으로, 그 행복을 자아[我]로 간주한다. 십이입처, 오온, 삼계, 연기 등의 설명은 범부의 의식이 어떤 원리에서 경험을 자아와 소유로 간주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에 반해 자신의 경험과 그 법들을 무상, 고, 무아로 관찰하는 것은 탐·진·치를 제거하여 ‘지금 있는 그대로’의 열반(涅槃)의 삶을 보여 준다.
· 집필자 : 우동필

용례

  •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지 못하였는가? 나는 마음도 쉬게 되었고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었는가?’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은 쉬게 되었지만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음이 쉬게 된 뒤에는 마땅히 최상의 지혜의 관법을 구해야 한다. 그는 그 뒤에 마음도 쉬게 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었지만 마음이 쉬게 되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에 머문 뒤에는 마땅히 마음이 쉬기를 구해야 한다. 그는 그 뒤에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고 또한 마음도 쉬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도 쉬게 되지 못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러한 비구는 얻지 못한 이 선법을 얻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꾸준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사람이 머리가 불에 타고 옷이 불에 탈 때에 빨리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얻지 못한 이 선법을 얻으려고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부지런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하면 그는 그 뒤에는 마음도 쉬게 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도 쉬게 되었고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었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선법에 머문 뒤에는 누진지(漏盡智)의 신통(神通) 얻기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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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 MN. Majjhima-Nikāya, III,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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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ṭis. Paṭisambhidāmagga. I, P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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