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업 |
|---|---|
| 한자 | 業 |
| 산스크리트어 | karman |
| 팔리어 | kamman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업보, 업인, 신업, 구업, 의업, 삼업 |
중생의 모든 행위와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초래하는 작용
전통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 작용을 뜻한다. 인도의 베다에서는 의식행위를 뜻하기도 했고, 자이나교에서는 영혼의 해탈을 방해하는 실체로 여겼다. 그래서 이 업(業)에 의한 속박으로부터 영혼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금욕과 수행을 통해 업을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불교에서는 업의 인과성은 받아들였지만 그 실체성은 부정하였다. 모든 행위는 반드시 선, 악, 즐거움, 괴로움 등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와 같은 업의 개념을 전생과 내생에 이르기까지 확장함으로써 윤회 사상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선한 행위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르고, 현재의 괴로움은 과거의 선하지 못한 행동[業]이 원인이 되어 필연적으로 초래된 결과일 뿐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반드시 그렇다고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의 행동에는 자신의 업[不共業]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업[共業]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인과적 요소가 영향을 끼쳐 다양한 인과관계의 힘으로 다르게 무르익어 가고(vipāka)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업의 종류로는 크게 몸으로 하는 행위작용인 신업(身業), 입으로 하는 행위작용인 구업(口業, 語業), 뜻으로 하는 행위작용인 의업(意業)이 있다. 이를 불교에서는 통칭해서 신‧구‧의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이 삼업의 특징으로는 선(善)과 악(惡),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로 구분할 수 있다. 선한 행위는 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열 가지 악한 행위[十不善道, 十惡業道, 十黑業道]와 이를 행하지 않는 열 가지 선한 행위[十善道]로 나눈다.
몸으로 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는 첫째,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살생(殺生), 둘째, 다른 사람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도둑질[偸盜], 셋째, 성적으로 삿되게 행동하는 사음(邪婬)을 말한다. 이를 하지 않는 것, 즉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지 않으며 성적으로 삿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을 몸으로 하는 선한 행위라고 한다. 이 밖에도 온갖 종류의 선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들, 선정을 방해하는 행위들을 하지 않는 것이 선한 행위이다. 말로 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에는 거짓말이나 허망한 말[妄語],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언어폭력[惡口], 이간질[兩舌], 교묘하게 꾸며 내어 진정성이 없거나 진실하지 않은 말[綺語]이 있다. 이처럼 네 가지 선하지 않은 행위와 온갖 선하지 않고 이치에 맞지 않으며 선정을 방해하는 말로 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말로 하는 선한 행위이다. 생각으로 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는 탐욕(貪欲)과 분노[瞋恚], 잘못된 견해[邪見]를 말한다. 나아가 온갖 선하지 않은 생각과 이치에 맞지 않은 생각, 선정을 방해하는 생각 모두를 생각으로 하는 선하지 않은 행위라 하고, 이 모두를 행하지 않는 것을 생각으로 하는 선한 행위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인간의 행동, 말(언어), 생각은 잠재적인 힘[業力]을 남기고 그 힘에 상응하는 과보를 초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에 대한 원인이므로 업인(業因)이라고도 한다. 이 세 가지 업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적인 힘과 영향력이 있기 때문이다.
업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다양하게 부르기도 한다. 선한 행위를 백업(白業), 선하지 않은 행위를 흑업(黑業), 선하지 않으면서 선한 행위를 흑이면서 백인 업, 선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닌 업을 흑도 백도 아닌 업이라고 한다. 또한 정토에 태어나는 원인으로서 청정한 행위를 업이라 하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원소의 작용을 가리키기도 한다. 호칭이 어떻든 업은 행동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 즉 원인이 되는 행위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할 때까지 행위를 한 사람의 마음에 상속(cittasaṃtāna)된다. 그러므로 행위의 과보를 다른 사람이 받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행위를 대신 속죄할 수도 없다.
과보로서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관점에서는 보상의 의미가 있었지만 원래의 의미로는 선악의 판단을 포함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특히 인도 전통 철학의 ‘아트만(ātman)’을 업으로 대체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윤회의 주체로서 아트만은 변하지 않는 실체이지만 무아(無我, anātman)를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그와 같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업’을 통해 행위와 행위의 결과, 모두의 주체를 설명할 수 있었다. 행위가 일어나고 상속하여 결과로 연결되는 업의 인과 과정은, 마치 우유에서 요구르트가 생기듯이, 변하지 않는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업의 실상을 바로 깨달아 자신을 변하지 않는 실체로 여기는 집착을 끊고 업과 윤회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 집필자 : 배경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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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이란 신업(身業)과 구업(口業)과 의업(意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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