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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왕보살

한글약왕보살
한자藥王普薩
산스크리트어bhaişajya-rāja bodhisattva
유형용어
키워드대일여래, 밀교, 만다라, 약사여래, 불국토
비구와 승단에 약을 보시하고, 중생의 마음과 몸을 치유하는 보살로 아미타불 25권속의 하나
산스크리트 바이사쟈라자(bhaişajya-rāja, 鞞逝舍羅惹)를 번역한 말로 『법화경』과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 『능엄경』 등에서 볼 수 있다. 승려와 승단에 좋은 약을 보시하고, 중생의 몸과 마음을 치료한다고 하였다. 수나라 때 가상(嘉祥) 대사의 소(疏)에는 “약왕보살은 과거세에 약으로 병을 구하였기에 약왕이라 이름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약왕보살은 약상보살(藥上菩薩)과 함께 등장하는데, 『묘법연화경』의 「묘장엄왕본사품(妙莊嚴王本事品)」에는 약왕보살과 약상보살의 본생 이야기가 등장한다. 강랑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한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 따르면, “약왕보살은 약상보살과 함께 형제로 성숙광(星宿光), 전광명(電光明)이라 하였다. 성숙광장자는 과거 유리광조(琉璃光照)여래가 있던 상법시대에 일장비구(日藏比丘)가 대승보살의 본연을 칭탄하고 여래무상청정평등의 대혜를 설하고, 마음에 큰 환희를 내어 감로약을 들은 것과 같았고, 이로 인해 각종 설산의 약으로 여러 비구 무리를 공양하고,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의 원을 지었다.”라고 하였다. 『법화경』 권7 「묘장엄왕본사품」에는 “과거 운외음숙왕화지불이 있을 때 법화경을 설하고, 이때 국왕이 있었으니 이름을 묘장엄(妙莊嚴), 부인은 정덕(淨德)이라 하였는데 두 자식이 있었으니 정장(淨藏)과 정안(淨眼)이라 하였으니, 곧 약왕, 약상보살이다.”라고 하였다. 『약왕약상이보살경』에는 약왕보살의 상호에 대해 “약왕보살은 신장은 12유순이고, 중생에 따라 18장 혹은 8척의 몸을 나타낸다. 몸은 자금색으로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갖추어 붓다와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성하는 약왕보살의 상호는 머리에 보관을 쓴 형태로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오른손은 가슴 앞에 엄지와 중지, 무명지로 약초를 쥔 형태이며, 진언은 ‘옴 비사가라자야 사하(唵 鞞逝舍羅惹耶 莎訶)’ 혹은 ‘나모 사만다 붓다남 흘챠나다라염검 사하(曩莫 三曼多 部馱囊 訖叉拏多羅閻劍 莎訶)’이다. 『능엄경』에도 약왕과 약상 두 보살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관약왕약상이보살경』에서 형제가 유리광조(琉璃光照)여래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藥師如來)신앙과 관계가 깊지만, 약사신앙에 비해 약왕보살신앙은 주로 『법화경』과 연계해 신앙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돈황 막고굴에도 약왕보살이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불교에서는 오대산 월정사의 보살상을 희견보살(喜見菩薩)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약왕보살의 전신에 해당한다.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실려 있는 『월정사사적(月精寺事蹟)』과 『신효거사친견류오성사적(信孝居士親見類五聖事蹟)』에는 “탑 앞에 약왕보살석상(藥王菩薩石像)이 있는데, 손에 향로를 들고 탑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절의 남쪽 금강연(金剛淵)에서 나왔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월정사사적기』에 “이 보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다.”라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를 문수보살상이라 하는 등 이에 대해 이론이 많다. 한국불교에서 한쪽 무릎을 세운 공양 형태는 삼국시대부터 그 예가 나타나며, 월정사 보살의 원통형 보관은 거란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집필자 : 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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