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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무외인

한글시무외인
한자施無畏印
산스크리트어abhaya-mudrā
유형용어
키워드수인, 여원인, 시무외여원인
붓다나 보살이 짓는 수인의 하나로, 붓다의 두려움 없는 깨달음과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는 공덕을 상징하는 형상
붓다가 성도한 후 두려움이 없는 경지를 얻었음을 상징하는 수인(手印)이다.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취한 채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려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는 형태이다. 초기 불상에서 석가모니 붓다의 불상 조성에 빈번히 나타나는 수인을 석가여래 근본오인(根本五印)이라고 하는데, 선정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전법륜인(轉法輪印), 여원인(與願印)과 더불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한 형태가 많다. 대승불교의 여래와 보살상에서는 왼손을 여원인을 취한 형태와 함께 조성한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시무외여원인이라 총칭하기도 한다. 인도에서 불상의 조성은 5세기 전후 쿠샨왕조 때 처음 시작되었는데, 간다라 양식 불상에서는 여래입상 형태에서 시무외인이 다수 조성되었다. 반면 마투라, 안드라 지역에서는 시무외인을 취한 불보살의 좌상이 광범위하게 조성되었다. 시무외인은 축복, 수호, 구원 등의 의미로 조성된 이란과 지중해의 신상에서 영향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아시아에서는 용문석굴 등에 많은 시무외여원인 형태의 불보살상을 조성하거나, 여원인 대신 보병이나 영락을 쥔 다양한 변형들이 출현하였다. 6세기 전반 조성된 용문석굴 가운데 빈양중동(賓陽中洞) 석굴에 안치한 석가여래좌상은 여원인과 더불어 시무외인을 함께 결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이것이 북위 선무제(宣武帝, 499~514)가 아버지 표문제(孝文帝)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라 전한다. 일본의 경우 나라(奈良)의 동대사(東大寺) 노사나불상도 주로 7세기 전후에 조성되었다. 당·송대의 관음상과 지장상의 경우 관음보살은 입상에 정병이나 연화를 든 모습으로, 지장보살은 반가좌상에 한 손은 시무외인을 하거나 보주를 들고 한 손은 무릎에 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당나라 이후에는 두 상 모두 입상이나 좌상 등 여러 형식으로 조성되었고, 관음보살의 지물도 다양해져 정병, 연화, 연줄기, 발 등을 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지장보살은 여전히 성문형에 보주를 든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시무외여원인을 취한 모습으로 법신 노사나불을 조성하였는데, 이 밖에도 시무외인을 취한 불보살상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광범위하게 조성되어 석조여래입상이나 보살상의 형태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시무외여원인을 취한 불상 형태는 초기 화엄계 노사나불에 국한하지 않고 점차 민간의 불교신앙에 퍼지면서 두려움을 없애고 소원을 들어주는 친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 집필자 : 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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