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소승 |
|---|---|
| 한자 | 小乘 |
| 산스크리트어 | hīna-yāna |
| 팔리어 | hīna-yāna |
| 티베트어 | theg pa dman p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대승불교, 부파불교, 상좌부, 대중부, 히나야나 |
대승불교가 스스로를 ‘대승(큰 수레)’이라고 부르며, 기존의 불교에 대하여 ‘작은 수레’라는 의미로 낮추어 부른 명칭
기원전 1세기에 일어난 대승불교(大乘佛敎)가 기존의 불교를 낮추어 부른 말이다. 히나야나(hīnayāna)의 ‘히나(hīna)’는 ‘남겨진, 버려진’이라는 본래의 의미에서 ‘열등한, 낮은’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야나(yāna)’는 ‘감, 진행, 탈것, 수레’라는 의미이다. 붓다가 열반에 든 후 100년 정도 지났을 무렵, 교단은 계율의 해석[남방 전승, 십사(十事)] 혹은 아라한의 깨달음에 대한 해석[북방 전승, 대천(大天)의 오사(五事)] 문제로 보수적 경향의 상좌부(上座部, Theravāda)와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 Mahāsaṅghika)로 분열하게 된다. 이렇게 근본 분열한 교단은 교법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하여 18개 또는 20개 정도의 부파(部派)로 지말(支末) 분열하게 되는데,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 또는 아비달마(阿毘達磨, Ⓢ abhidharma, Ⓟ abhidhamma)불교라고 한다. 이후 일어난 대승불교는 스스로를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큰 수레라는 의미의 ‘대승(大乘, mahāyāna)’이라고 부르고, 기존의 불교를 자신의 깨달음만을 중시한다고 폄하하면서 작은 수레라는 의미의 ‘소승(小乘, hīnayāna)’이라고 불렀다. 즉 소승, 히나야나라는 말은 대승불교가 사용한 표현으로 스스로 소승이라고 말하는 부파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것이 당시의 모든 부파에 대한 명칭이었는지 일부의 부파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일어난 후에도 부파교단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존속하고 있었고, 비문이나 현장(玄奘, 602~664)·의정(義淨, 635~713) 등의 인도 구법승의 기록에 따르면, 오히려 부파교단이 대승교단보다 더 큰 세력을 떨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소승불교를 학습하는 곳이 60곳, 대승불교를 학습하는 곳이 24곳, 소승과 대승을 함께 학습하는 곳이 15곳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 7세기 전반에는 부파교단이 우세했음을 알 수 있다. 부파불교는 대승불교로부터 ‘소승’이라고 불렸지만, 여러 부파의 교리는 대승불교의 사상과 교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 Sarvāstivādin)의 교리는 유식(唯識)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두 교리 사이의 공통점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유부의 교리는 그보다 먼저 『대지도론(大智度論)』과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도 채용되고 있다.
· 집필자 : 한상희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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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주(師子洲: 스리랑카)는 모두 상좌부[上座]를 따르고, 대중부[大衆]는 여기에서 배척을 받는다. 그러나 남해(南海) 여러 주[諸洲]에 10여 국이 있는데, 순전히 오직 유부(有部)를 근본으로 하고, 정량부[正量]도 가끔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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