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선원 |
|---|---|
| 한자 | 禪院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안거, 간화선 |
참선 수행을 하는 곳과 선종 사원을 일컫는 말
선 수행을 하는 선방(禪房), 선종의 사찰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 수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원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주요 수행이 좌선이기 때문에 좌선방(坐禪房)이라고도 한다. 선사(禪寺) 혹은 선찰(禪刹)이라고도 하며, 교종 사찰인 교원(敎院)이나 율종의 율원(律院)과는 대칭을 이룬다.
석가모니 생존 당시 여름철 우기(雨期) 동안 한곳에서 석 달간 안거한 것에서 비롯한다. 선원(禪苑)이라고도 하는데, 초전법륜(初轉法輪)을 시행했던 녹야원(鹿野苑)의 ‘원(苑)’에서 따온 명칭이다.
한국불교에서 선원은 강원(講院), 율원(律院), 염불원(念佛院)과 함께 전통 교육기관인 동시에 수행기관이다. 선원 안거는 원칙적으로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는 일정한 교육 기간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강원을 수료한 스님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평생 수행 교육기관이다. 다만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기초 교육기관인 강원이나 승가대학 대신 기초선원에 들어갈 경우에는 네 차례의 하안거를 마치도록 하고 있다.
선원은 한국의 총림에는 반드시 개원되어 있고, 큰 사찰 대부분에 개설되어 대소승의 율(律)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수행은 자율적이나 대중생활의 규율은 매우 엄격하다. 당나라 때 백장청규(百丈淸規)로부터 유래한 자체적인 규약을 엄격히 준수하는데 이를 대중청규(大衆淸規)라고 한다. 이 청규는 교종과 차이를 두어 사찰의 일상생활에서부터 각종 제도를 정비한 백장 회해(百丈懷海)에서 비롯하며, 이로써 선원으로 독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 이전에는 율종 소속의 사찰에 부속되어 있었다. 이에 대하여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백장회해전」에는 백장 선사가 선종의 초창기인 초조 달마에서 혜능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율사(律寺)에 부속되어 살았다고 전한다.
백장은 ‘우리는 대소승에 국한되지 않는 동시에 대소승과 다르지도 않다. 이들을 절충하여 규범을 설정하고 그 올바른 뜻의 실천에 힘써야 한다.’라고 하였다. 마조(馬祖)가 총림을 새롭게 구상하고 있던 중에 그 제자 백장이 청규를 제정하여 총림을 별도로 세우고 선종의 거처를 마련하였다.
선원의 전통적 수행은 좌선을 통해 스스로 견성(見性)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초하루와 보름 2회에 걸쳐 삭발식과 함께 조실(祖室)의 설법을 듣는다. 또 참구하는 도중 의심이 생기면 방장실에 들어가 문답을 나누며 그간의 공부를 점검받는다.
보통 화두를 드는 간화선(看話禪)이나 묵묵히 내면을 조견(照見)하고 성찰하는 묵조선(默照禪)을 행한다. 안거의 마지막 1개월 동안 용맹정진이라 하여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거쳐 결제로 회향하기도 한다. 한국불교는 선원에서의 수행 정도에 따라 법계가 승진되는 등 선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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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西京)에다 홍복사(弘福寺)를 지었소. 이 절에는 선원(禪院)도 있고 아주 고요한 곳이오. 법사는 그곳으로 가서 번역하도록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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