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상불경보살 |
|---|---|
| 한자 | 常不輕菩薩 |
| 산스크리트어 | sadāparibhūta bodhisattv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법화경』, 구마라집, 축법호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에 나오는 보살로, 대중들에게 항상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고 예배한 보살
이 보살은 모든 중생이 성불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늘 사부대중에게 “항상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常不輕).”라고 예배하며 자신에 대한 경멸이나 박해에도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불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법화경(法華經)』 권6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제20에 나오는 내용으로, 그는 석존의 과거 한 생의 몸[前身]이었다고 설해진다.
그런데 ‘상불경’으로 번역된 산스크리트 사다파리부타(sadāparibhūta)는 중의적 표현이어서, 예부터 그 의미 해석에 대하여 여러 논의가 있어 왔다. 이 단어는 ‘항상’을 의미하는 사다(sadā, 常)와 ‘업신여기다[輕]’라는 의미를 가지는 동사의 어근 ‘pari-√bhū-’의 과거수동분사인 파리부타(paribhūta), 혹은 파리부타에 부정접두사 ‘아(a-)’를 붙인 아파리부타(aparibhūta)의 복합어로서, 산스크리트 연성(連聲)에 따라 부정형으로도 긍정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 산스크리트 문법에 따르면 수동분사이기는 하지만 타동사에 ‘타(-ta)’ 어미가 붙는 경우 능동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부정형으로 해석하면 ① ‘상대를 항상 업신여기지 않는[常不輕]’이 되고, 긍정형으로 해석하면 ② ‘상대를 항상 업신여기는[常輕]’의 뜻이 된다. 여기에 긍정 수동형으로 해석하면 ③ ‘상대에게 항상 업신여김을 받는[常被輕]’, 부정 수동형으로 해석하면 ④ ‘상대에게 항상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常不被輕]’의 뜻이다.
일본의 우에키 마사토시(植木雅俊)는 『법화경』 「상불경보살품」의 이야기 흐름에서 네 가지 의미가 모두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① 보살은 누구라도 ‘항상 업신여기지 않았다’, ② 그에 반해 대중은 보살이 자신들을 ‘항상 업신여겼다’라고 생각하였다. ③ 그 때문에 보살은 대중에게 ‘항상 업신여김을 받았다’, ④ 그러나 결국 대중은 모두 보살을 믿고 따르게 되고, 이후 보살은 대중으로부터 ‘항상 업신여김을 받지 않았다’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법화경』의 편찬자는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네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기교적인 명칭을 고안해 낸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중의적인 산스크리트 표현의 뜻을 모두 포괄하여 번역하기는 어렵다. ‘상불경’이라는 명칭은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의 번역으로, ① ‘상대를 항상 업신여기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채택한 것이다. 이것은 상불경보살이 “나는 깊이 당신들을 존경하며, 감히 업신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모두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항상 사부대중에게 예배한다는 『법화경』의 경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축법호(竺法護) 역 『정법화경(正法華經)』에서는 ③ ‘상대에게 항상 업신여김을 받는’이라는 뜻으로 ‘상피경만(常被輕慢)’이라고 번역하였다. 이것은 이 보살이 대중에게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성불수기(成佛授記)를 하였고, 그로 인해 증상만(增上慢)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과 박해를 받았다는 경전의 내용과 부합하는 명칭이다.
동아시아에서는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이 널리 유포되었기 때문에 ‘상불경보살’이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상불경보살의 보살행은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인간 존중 사상의 극치를 잘 보여 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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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위음왕여래께서 멸도하시고 정법이 멸진한 뒤 상법 가운데 증상만의 비구가 큰 세력을 가졌더니, 그때 상불경(常不輕)이라는 한 보살 비구가 있었느니라. 득대세야, 무슨 인연으로 그를 상불경이라 이름하는지를 아느냐? 이 비구는,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를 보면 모두 다 예배하고 찬탄하며 말하였느니라. ‘나는 그대들을 깊이 공경하고 경만하게 생각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반드시 성불하기 때문이니라.’ 그 비구는 경전을 읽지도 않고 외우지도 아니하며 다만 예배만 행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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