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삼계화택 |
|---|---|
| 한자 | 三界火宅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법화경 비유품, 화택유, 삼승, 일불승, 회삼귀일, 사거가, 삼거가 |
중생이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삼계가 마치 불난 집과 같다는 『법화경』에 나오는 비유
삼계(三界)는 산스크리트어 트라요 다타바(trayo dhātavaḥ)의 번역으로, 중생이 사는 곳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미혹한 중생이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육도(六道)의 세계를 번뇌의 성격에 따라 셋으로 구분한 것으로, 삼유(三有)라고도 한다.
‘화택(火宅)’은 불타는 집이라는 뜻의 범어 아딥타가라(ādīptāgāra)의 번역으로,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는 번뇌가 치성하여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법화경』의 제3 「비유품(譬喩品)」에 설해진 화택의 비유[火宅喩]에 나오는 표현으로, 『법화경』의 일곱 비유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중생은 탐‧진‧치의 삼독(三毒)으로 인하여 삼계에서 태어나고 죽기를 거듭하면서 온갖 번뇌와 고통을 끊임없이 받고 있으나, 오히려 스스로는 자신이 그러한 고통 가운데 놓여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마치 집에 불이 나서 활활 타고 있는데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불난 집 안에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놀이에 빠져서 집 밖으로 나올 줄 모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 것이다.
화택의 비유에서는, 큰 장자인 아버지가 불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간곡하게 일러 주었지만 아이들이 놀이에 정신이 팔려 들을 생각을 하지 않자, 그들을 구하고자 방편을 베풀었다. 즉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의 수레[羊車], 사슴 수레[鹿車]와 소의 수레[牛車]가 있다고 말한 다음, 아이들이 그것을 갖고 싶어 불난 집에서 뛰쳐나오자 세 수레가 아닌 진귀한 보배로 꾸며 장엄한 큰 흰 소가 끄는 수레[大白牛車]를 아이들에게 모두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 큰 장자는 부처님을 비유하고, 아이들은 중생을 비유하며, 세 수레는 삼승(三乘)을, 큰 흰 소의 수레는 일불승(一佛乘)을 비유한다. 결국 부처님이 삼계라는 불난 집에 갇혀 있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먼저 방편으로 삼승의 가르침을 베푸신 다음, 궁극에는 모두에게 똑같이 일불승의 진실한 가르침을 열어 보이심을 나타낸 비유이다.
중국불교에서 이 화택유의 수레에 대한 해석으로 삼거가(三車家)와 사거가(四車家)가 있다. 천태종과 화엄종에서는 세 수레는 삼계 안[界內] 방편의 가르침으로서 삼승(三乘)을 비유하며, 대백우거(大白牛車)는 삼계 밖[界外] 일승(一乘)의 진실한 법문을 비유한다고 보았다. 즉 성문·연각·보살의 삼승 외에 별도로 일불승이 있다고 하는 사거가의 입장에서 ‘삼승을 모아 일승으로 돌아감[會三歸一]’을 말한다. 반면 삼론종이나 법상종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은 삼승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세 수레 중 소 수레와 대백우거는 동체(同體)라고 한다. 이러한 삼거가의 입장에서, 성문과 연각의 이승(二乘)을 모아 보살승(菩薩乘)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회이귀일(會二歸一)을 말한다.
· 집필자 : 오지연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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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삼계의 불타는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말며, 누추한 빛[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촉감[觸]을 탐내지 말라. 만일 탐내고 애착하면 곧 불에 타게 되느니라. 너희들이 삼계에서 빨리 나오면 마땅히 성문이나 벽지불 또는 불승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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