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백련결사 |
|---|---|
| 한자 | 白蓮結社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만덕사, 원묘 국사 요세, 보현도량, 진정 국사 천척, 정명 국사 천인 |
고려시대에 원묘국사 요세가 『법화경』 독송과 참회 및 정토행을 주된 수행으로 삼아 이끌었던 대중적 불교 신행단체
고려 무신정권기에 전라남도 강진 만덕산(萬德山)에서 결성된 불교 신행단체로서, 백련사(白蓮社)라고도 한다. 결사(結社)란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단체를 조직하는 것이나 조직된 단체를 말한다.
백련사를 결성하고 이끈 인물은 고려 천태종의 고승인 원묘(圓妙) 국사 요세(了世, 1163~1245)이다. 그는 경상남도 의령 서(徐)씨 집안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천태교관(天台敎觀)을 익히고, 23세에 승과시험에 합격하였다. 36세에 고려 수도 개경에 있는 고봉사(高峰寺)의 법회에 참석하여 이론이 분분한 좌중을 굴복시키고 동행 10여 명과 전국을 두루 돌아다녔다.
장연사, 불갑사, 귀정사 등을 거쳐 46세에는 전라남도 영암 월생산(月生山)의 약사난야에 머물렀다. 이곳에서 그는 천태교관을 강의하는 한편 대중들과 함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2차례씩 53불께 예배하며 참회수행을 하여 주위에서 ‘서참회’라고 불렀다. 이때 강진 지역의 명사인 최표, 최홍, 이인천 등 불자들이 요세를 찾아와 만덕산에 있는 만덕사(萬德寺)의 옛터로 주석을 옮길 것을 청하였다. 요세는 그곳의 지세를 살핀 뒤 청을 받아들여 제자들에게 절의 중창을 감독하도록 하였다. 5년 뒤인 1216년(고종 3)에 80여 칸의 가람이 완성되자 그곳으로 옮겼다.
70세가 되는 1232년(고종 19) 4월 8일에 처음으로 만덕사에서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결성하였다. 보현도량이란 『법화경(法華經)』을 받아 지녀[受持] 읽고[讀] 외우거나[誦] 베껴 쓰거나[書寫] 해설하는 법화수행처를 말한다. 이러한 수행을 하는 곳에는 보현보살이 찾아가 보호한다는 「보현보살권발품(普賢菩薩勸發品)」의 내용에 의거하여 ‘법화도량’ 혹은 ‘보현도량’이라고 부른다.
수행의 내용은 천태 지의의 찬술인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의 방식에 따라 법화삼매를 닦는 것과 염불을 통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법화삼매는 ‘법화참법’이라고도 하는데 행법의 주된 내용은 삼보께 예경하고 육근으로 지은 죄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며, 불상 주위를 돌면서 염불과 『법화경』을 독송한 다음, 앉아서 좌선하는 것이다. 예경은 하루에 여섯 차례, 좌선은 네 차례씩 한다.
1236년(고종 23)에는 제자 천척(天頙, 1206~?)에게 ‘백련결사문’을 짓도록 하였다. 백련(결)사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 이때부터인지 혹은 4년 전 보현도량을 결성할 때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행법은 만덕산에 보현도량이 결성된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세가 백련사를 이끈 30년 가까운 기간에 머리 깎고 제자 된 이가 38명, 지체 높은 신분으로 결사에 참여한 이가 300여 명, 『법화경』을 외운 이가 1천여 명이었다고 한다. 원묘 국사가 83세를 일기로 입적하고 난 뒤 백련사의 주법은 그의 제자인 정명(靜明) 국사 천인(天因, 1205~1248)이 계승하였다. 이어서 제3세 원환(圓睆) 국사, 제4세 진정(眞靜) 국사 천척으로 주법이 이어졌는데 이후의 사정은 확실하지 않다.
백련사는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가 조선시대 천태종 고승 행호(行乎)가 효령대군의 시주를 받아 6년간의 중창 불사 끝에 1436년(세종 18)에 낙성되었다. 이후 사찰은 폐사와 중창을 거듭하면서 이름이 만덕사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만덕산 백련사(白蓮寺)로 부른다.
백련결사는 동쪽에도 전해졌다. 요세를 만덕산으로 초빙한 고려의 최자(崔滋)가 중심이 되어 폐사된 경상북도 문경 공덕산 미면사(米麵寺)를 중창한 뒤 1244년(고종 31) 요세의 제자 천척을 법주로 초빙하여 백련결사를 결성하니, 이를 ‘동백련사’라고 불렀다.
불교가 승과시험에 합격한 지식인을 중심으로 귀족불교와 학해불교로 흐르던 고려 중기의 불교계에서 천태의 수행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불교 실천 운동을 펼친 것이 요세의 백련결사이다. 이 행법에는 업장이 두꺼운 중생에게 맞는 행법인 예배와 참회로부터 염불과 독경, 그리고 근기 높은 사람에게 적합한 좌선 사유가 모두 포함되며, 또한 출가자와 재가자가 구별 없이 동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불교의 새바람을 일으킨 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집필자 : 최기표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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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서산鷲捿山 백련난야白蓮蘭若의 수행 모습은 여산廬山의 백련결사白蓮結社의 모습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흥왕하였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멸하고 나면 적멸이 낙이 된다.(生滅滅已。 寂滅爲樂。)”라고 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병자년(고종 13, 1876) 여름에 조용히 적멸을 보이시니, 나무도 하얗게 변하고 시냇물도 오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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