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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고좌

한글백고좌
한자百高座
유형용어
키워드『불설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 『인왕호국경』, 백고좌도량
고승 100명이 사자좌(獅子座) 100개에서 경전을 강설하는 법회
사자좌를 100자리 마련하고 100명의 고승을 초청하여 국가의 안녕과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하던 법회이다. 백고좌도량, 백좌도량, 백좌법회, 백좌백강이라고도 한다. 강설하는 경전에 따라 ‘백고좌 인왕호국도량’이라고 하거나, ‘백고좌 약사강’이라고도 하였다. 인왕호국도량에서는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을, 약사강에서는 『약사경(藥師經)』을 강설하였다. 백고좌법회의 주요 목적은 『인왕호국경』의 내용대로 국가의 태평성대와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이다. 고려시대 대몽 항쟁기에 가장 많은 횟수로 개설되었는데 이로써 국가적 위기를 불경의 힘으로 극복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기후의 순조로움을 기원하기도 했으며, 특별히 목표를 기록하여 천재지변을 극복하기 위한 법회임을 밝힌 것도 있다. 백고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남아 있다. 551년(진흥 12)에 신라의 거칠부(居柒夫)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구려 고승 혜량(惠亮)을 신라로 모셔 오자 왕은 혜량을 승통(僧統)으로 삼아 백고좌와 팔관재(八關齋)를 행하였다고 한다. 이후 신라에서는 613년, 636년, 779년, 924년에 개설된 것 외에 전부 10여 차례의 백고좌법회가 열렸다. 고려시대에는 더 자주 열려 『고려사』에는 모두 119회의 백고좌법회가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라 백고좌를 인왕법회라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포함한 횟수이다. 조선시대에는 억불 정책이 시행되어 태조 때 한 차례 개최된 기록이 있을 뿐, 조선 전기에 이미 폐지되었다. 근현대에 이르러 다시 개최되기 시작하였는데, 1994년에 개최된 이후 부흥하여 매년 한 차례 이상 열리며 지속되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나라를 보호하는 법을 설할 것이다. 일체 국토가 만약 어지러워지려고 할 때 모든 재난과 도적이 와서 파괴하니, 그대들 모든 임금은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기억하여 외우며 도량을 장엄하게 꾸미어 백 개의 부처님 형상을 모시고 백 개의 보살상을 모시고 백 개의 사자좌에 백 명의 법사를 청하여 이 경을 설하라. 모든 자리 앞에는 갖가지 등을 켜고 갖가지 향을 사르고 여러 가지 꽃을 흩으며, 의복·와구(臥具)·탕약·방사(房舍)·자리[床座] 등 일체 공양하는 일로 널리 공양하며 매일 두 때[二時]에 이 경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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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 삼국유사(三國遺事)
    도서 일연, 김원중 역 | 서울: 민음사 | 2014 상세정보
  • 인왕호국경
    도서 백진순 역 | 서울: 동국역경원 | 2022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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