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반야 |
|---|---|
| 한자 | 般若 |
| 산스크리트어 | prajñā |
| 팔리어 | paññā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반야바라밀, 지혜, 보살, 대승, 열반, 깨달음 |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는 궁극적인 지혜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prajñā)와 팔리어 판냐(paññā)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한 말로, 뜻으로 번역하면 ‘지혜’가 된다. 하지만 경전에 따라서는 지혜와 반야를 구분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반야는 깨달음을 얻는 진실한 지혜, 깨달음의 지혜, 진실을 보는 지혜의 눈 등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반야에 의해 붓다가 되기 때문에 불모(佛母)라고도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반야의 획득이 바로 열반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단순히 지혜라고 번역하면 원어의 깊은 의미를 잃어버릴 우려가 있었고 ‘반야’라고 음사해서 번역하는 쪽이 사람들의 존경을 일으키기도 쉬웠다. 이는 불경을 한역(漢譯)할 때 다섯 가지 경우에는 번역하지 않는다는 오종불번(五種不翻)의 원칙 중 ‘지혜’라고 번역하면 원어의 심오한 의미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尊重故] 뜻으로 번역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원효는 그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반야를 지혜라고 지칭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야란 언어를 넘어서고 분별을 끊은 것이기 때문에 언어와 분별을 벗어나지 못한 지혜라는 말로는 반야의 원래 의미를 드러낼 수 없다. 또한 반야가 뜻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고 다양한데 지혜라는 단어는 한계가 있고 정해진 범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야바라밀은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는 완전한 지혜, 최상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반야를 ‘그노시스(gnosis)’라고 이해하기도 하는데, 이는 ‘신과의 신비한 합일을 가능하게 하는 지혜’라는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영원불변한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근원적인 차이는 있지만 어느 쪽이든 깨달음 혹은 절대적인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반야의 이러한 특성은 초기불교 이래 많은 불전에서 언급되고 있다. 윤회에서 열반으로, 번뇌의 세계에서 해탈의 세계로 가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도 반야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다른 모든 방법의 기반이 된다.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게 하는 다섯 가지의 힘과 근원인 믿음[信, śraddhā], 노력[精進, vīrya], 기억[念, smṛti], 선정[定, samādhi], 지혜[慧, prajñ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붓다의 가르침을 믿거나 힘써 수행하거나 늘 마음에 지녀 잊지 않거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집중하거나 하는 모든 활동에 지혜는 필수 불가결한 근원적인 실천이다. 또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실천행인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의 여섯 가지 바라밀 중에서도 반야바라밀은 다른 다섯 가지 바라밀의 토대가 되고 어떤 바라밀도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완전한 바라밀이 되지 못한다.
초기유가행파에서는 여리지(如理智)를 반야라 하고 여량지(如量智)를 반야의 과보라고 한다. 여리지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평등한 진리에 상응하는 무분별 지혜로 진제의 지혜[眞諦智]이다. 여량지는 현상계의 갖가지 차별적인 모습에 상응해서 그것을 명확하게 아는 속제의 지혜[俗諦智]이다. 그러므로 반야의 지혜는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여리지의 눈으로 중생 세계의 온갖 모습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야는 이처럼 진제의 지혜이자 최고 경지의 지혜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무한한 자비심을 갖게 하고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 반야는 공(空)을 여실하게 아는 것이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실천 수행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이므로 반야라는 말도 반야를 지칭하지 못하고 다만 명칭이 반야일 뿐이다.
반야와 반야바라밀의 이와 같은 사상은 대승경전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주문, 진언을 설하는 후기 밀교경전의 중심 내용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는 『반야경』에 반야바라밀이 최고의 주문, 진언이라고 언급된 것과도 관련된다.
· 집필자 : 배경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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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五衆)은 바로 온갖 세간에서 마음으로 하는 행을 결박하는 처소요, 열반은 곧 고요하고 사라진 모양[寂滅相]이다. 보살은 반야바라밀이라는 예리한 지혜의 힘으로써 능히 오중을 파괴하고 통달하여 공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열반의 고요하고 사라진 모양이다. 이 고요하고 사라진 데서부터 벗어나 육정(肉情) 가운데에 머무르되 도리어 고요히 사라진 모양을 생각하면서 ‘세간의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고 거짓이며 견실(堅實)하지 못한 것’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반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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