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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한글반가사유상
한자半跏思惟像
유형용어
키워드미륵보살상
반가부좌(半跏趺坐)로 삼매에 들어 사유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존상
의자 혹은 연화대에 걸터앉아 왼 다리는 땅에 늘어뜨리고 오른 다리를 그 무릎에 가로 포개 올려 왼손을 오른발 복사뼈에 자연스레 얹고서, 상체를 약간 숙인 채 오른 팔꿈치를 굽히고 오른손으로 오른뺨 아래를 받치고 사유하는 자세를 표현한 존상이다. 태자사유상(太子思維像)과 미륵사유상(彌勒思惟像)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양자를 놓고 학계의 논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존상에 태자사유상이라고 새겨진 예가 있고 미륵보살과 관련된 글이 새겨진 예도 있다. 북위(北魏) 이래로 미륵보살의 형상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로는 인도 간다라 지역에서 ‘생각하는 태자사유상’의 형태로 출현하기 시작하였다고 본다. 출가를 결심하는 싯다르타 태자와 출가 후 수도할 때의 태자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나뉜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 수용되었다. 중국에서는 북위 5세기 말 운강석굴에서 교각미륵상과 함께 여래좌상의 협시보살로 등장하였다. 미륵사유상도 미륵이 도솔천에 있을 때와 하생하여 출가를 고민할 때의 모습 두 가지로 나타난다. “결가부좌는 여래좌이고, 반가부좌는 보살좌”[『염송경(念誦經)』]라고 하여 보살의 좌법이라는 인식도 이 존상을 ‘미륵사유상’으로 보는 견해에 영향을 주었다. 북제(北齊) 때에 제작이 성행했으며 독립된 상으로 출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말인 7세기에 미륵신앙의 유행과 함께 많이 조성되었다. 특히 국보 78호 상과 국보 83호 상은 동아시아 반가사유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중국의 양식을 소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재해석·재창조하여 중국 반가상의 심미적 수준을 뛰어넘은 독창적 예술 세계를 보여 준다고 평가된다. 한편 신라에서는 통일 이후 화랑의 투혼과 삼국통일을 기념하기 위한 일종의 전승기념물로서 경주 송화산 출토 석조반가사유상, 봉화 북지리 출토 석조반가사유상 등이 조성되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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