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묵조선 |
|---|---|
| 한자 | 默照禪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간화선 |
간화선과 대비되는 수행법으로, 묵묵히 좌선하며 마음을 비추는 선
남송의 대혜 종고(大慧宗杲)가 단지 묵묵히 면벽좌선만을 일삼는 조동종의 굉지 정각(宏智正覺)이 선도한 선풍(禪風)을 비판하여 부른 데서 규정된 선법이다.
묵(默)은 침묵하며 오로지 좌선하는 것, 조(照)는 본래 청정하며 영묘한 마음을 비추는 작용을 뜻한다.
묵조선은 통상 간화선과 비교된다. 대혜 종고가 간화선을 주창하면서 묵조선을 비판하며 의미를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혜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하며 비판한 대상은 특정한 무리가 아니라 선정의 경계에 갇혀서 묵묵히 관조함을 궁극으로 간주하여 활발한 작용이 없는 당시의 모든 선법이다. 비판의 안목은 반드시 간화선의 관점은 아니며 안팎에서 자유자재로 선정의 경계를 펼치는 조사선 일반의 관점이다. 이러한 대혜의 비판을 의식하고 굉지 정각은 「묵조명(默照銘)」이라는 게송을 지어 적극적으로 묵조의 개념을 활용하기도 하였지만, 묵조를 근본으로 삼았다는 평가는 확정할 수 없다.
굉지 정각의 견해에 따르면, 실상(實相)이란 상이 없는 상이요, 진심(眞心)은 무심한 것이 그 마음이며, 진실로 얻음이란 얻음이 없는 얻음이요, 진실한 작용이란 작용이 없는 작용이라면서 좌선하며 세속의 관념을 비울 뿐[坐空塵慮], 깨달음을 기약할 필요 없이 오직 무소득(無所得), 무소오(無所悟)의 태도로 좌선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지관타좌(只管打坐) 선법이라고 한다.
대혜 종고는 깨달음에는 힘쓰지 않고 그저 수행만 일삼는 선법[無事禪]이요, 마치 죽은 나무나 식은 재처럼 번뇌 망상의 열기는 식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공무(空無) 일변도에 빠져 활발한 작용을 결여한 선법[枯木死灰禪]이라고 비판하였다.
묵조선은 자기 속에 내재하는 본래의 청정한 자성에 의지하는 선으로 좌선 그 자체를 중시한다. 묵(默)과 조(照)는 수식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이다. 묵이 좌선하고 있는 몸의 모습이라면 조는 깨어 있는 마음의 모습이다. 몸과 마음의 차이가 없다는 신심일여(身心一如)의 도리가 묵조선의 수행법이다.
묵조선은 조동종의 주요한 수행법으로 조동 선맥의 원류는 혜능의 제자인 청원 행사(靑原行思)이다. 당나라 말에 조산 본적(曹山本寂)과 동산 양개(洞山良价)에 의해 조동종이 성립된 것으로 본다. 근본 교의는 동산오위(洞山五位)를 비롯하여 『보경삼매(寶鏡三昧)』, 『오위현결(五位顯訣)』, 『삼종타(三種墮)』 등에 나타난다. 특히 회호(回互)로 시작되는 여덟 가지 기관(機關)을 설명한 것은 『팔요현기(八要玄機)』이다. 이는 스승이 학인을 지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고 오위의 사상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였다.
묵조선에서는 좌선을 여법한 육체의 자세이면서 마음의 조화로 본다. 올바른 좌선이 육체에서 나오고 또한 올바른 마음이 좌선으로 나타난다고 할 때 이를 지관타좌(只管打坐)라고 한다.
지관타좌는 육체의 수행이면서 마음의 깨침이다. 좌선 없는 수행은 수행도 아니고 묵조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올바른 묵조선으로 이어지면 신심탈락(身心脫落)의 현성(現成)으로 이어지고 해탈과 열반으로 이어진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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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교종과 남쪽 선종은 그저 그런 말, / 앞의 미혹과 뒤의 깨침은 고선(枯禪)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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