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무차대회 |
|---|---|
| 한자 | 無遮大會 |
| 산스크리트어 | pañcavarṣika, pañcavārṣika-maha |
| 유형 | 용어 |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행하여 공덕을 베푸는 법회
왕과 관민 등이 시주가 되어 도속(道俗)·귀천·상하를 가리지 않고 불보살로부터 사람, 지옥, 아귀, 축생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게 베푸는 법회를 의미한다. 무차는 아무도 차단[遮]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차우슬회(般遮于瑟會), 반차발리사회(般遮跋利沙會), 반차파률가사회(般遮婆栗迦史會) 등이라고도 한다.
본래는 장자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기 위해 고대 인도에서 일종의 통과의례였던 정계(頂髻)를 기념한 것에서 비롯한다. 부처님이 5세 때에 정수리의 머리털을 깎고 집회를 연 뜻을 기념하여 오세회(五歲會)라고 하며, 5년에 한 번 성대하게 베푸는 법회라고 해서 오년대회(五年大會), 오년공덕회(五年功德會)라고도 한다.
『근본설일체유부니다나(根本說一切有部尼陀那)』 5권의 기록에서 관련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세존께서는 보살이셨을 때 몇 살에 정계를 깎으셨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살이오.”
“저는 지금 그날을 기념해 5년마다 대회를 열고자 합니다.”
이후 보시회(普施會) 또는 반승(飯僧)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범망경고적기(梵網經古迹記)』에는 8종 복전 가운데 설무차회(設無遮會)를 들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양나라 무제가 동태사(同泰寺) 낙성식에 승속(僧俗) 5만 명을 모아 사부(四部) 무차대회를 행한 이래 여러 왕조에 걸쳐 무차대회가 성행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는 고려 태조가 일주야 동안 무차대회를 행한 이래로 중음(中陰)을 천도하는 무차수륙회(無遮水陸會)로 변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무차대회가 수륙무차회로 대치되었는데, 국행(國行) 수륙재는 1434년(세종 16) 이후 단절되고 지방 사찰에서 중음을 천도하는 수륙회가 꾸준히 열리면서 그 명맥이 유지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98년 고불총림 백양사에서 서옹 스님이 무차선회를 부활시킨 이후, 크고 작은 여러 형태로 법석이 마련되고 있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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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유적지에는 한결같이 가람을 짓고 5년에 한 차례씩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으며 국고를 남김없이 기울여 중생에게 베풀었다. 그러나 병기(兵器)만은 남겨 두어 베풀어 주는 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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