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무아 |
|---|---|
| 한자 | 無我 |
| 산스크리트어 | anātman |
| 팔리어 | anattan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오온, 십이입처, 삼계, 윤회, 삼법인 |
모든 경험에서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없다는 개념
모든 경험에서 실체적 자아[我, ātman]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없다는 개념이다. 붓다 당시 지배계급인 바라문(婆羅門, brāhmaṇa)들은 브라만[梵, brahman]의 내재적 실재인 아트만을 발견하는 것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삼았다. 바라문들은 베다(Veda) 시기에는 현세지향적 태도로 생을 찬미하고 죽음을 새로운 생을 위한 과정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우파니샤드(Upaniṣad) 시기에 윤회와 그 주체를 탐구하면서 점차 생사윤회의 영역을 고통의 세계로, 브라만과 아트만의 합일을 환희의 세계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초월적 세계에 대한 지향은 맹목적인 믿음과 계급의 권력으로부터 사성계급(四姓階級)의 차별을 고착시켰고, 무의미한 희생 제례를 초래했으며, 현실의 가치나 규범을 위태롭게 하였다.
아트만에 대한 주장은 영속한 것[常, nicca]을 궁극적인 환희[樂, sukha]로 간주하고 그 상태를 자아로 간주한 것이다. 붓다는 경험할 수 있는 영역 어디에도 영속한 것은 없고[無常, anicca], 영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궁극적 즐거움이 아니며[苦, dukkha],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에 자아라고 간주할 수 없다[無我, anattan]고 비판한다. 무아는 상·낙·아의 틀에서 주장된 자아 개념을 무상·고·무아로써 비판하는 맥락에서 제기된 것이다.
무아와 윤회는 업보에 따른 구분이다. 윤회는 삼계(三界) 혹은 욕계육도(欲界六道)에서 이루어지고 각 영역에 도달하게 만드는 힘은 업(業, kamman), 즉 행위[身]·말[口]·생각[意]이다. 색계와 무색계에는 선정의 집중력을 통해 도달하게 된다. 이 경우 삼계, 윤회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각 업에 따른 과보의 영역을 보인다. 반면에 무아는 삼계에 자아라고 간주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고, 출세간은 삼계를 대상으로 삼아 무아 통찰이라는 반야[慧, paññā]의 조건으로부터 발현된다. 무아 통찰은 십이입처(十二入處), 오온(五蘊)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삼계, 윤회는 경험적인 측면에서 동기적이고 결과적인 인과응보의 인과 모형을 제공하고, 무아의 출세간은 고멸(苦滅)의 업보론을 제공한다. 따라서 무아와 윤회의 관계는 반야의 유무에 따른 구분이기 때문에 모순되거나 양립되는 것이 아니라 업보에 따른 구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집필자 : 우동필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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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은 나[我]가 아니다. 만일 색이 나라면 응당 색에서 병이나 괴로움이 생기지 않아야 하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기 때문에 색에는 병이 있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며, 또한 색에 대하여 ‘이렇게 되었으면……’ 한다든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수‧상‧행‧식도 이와 같으니라.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색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 “비구들아, 만일 무상하다면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 “그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 “만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그런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그런 것에 대해 과연 ‘이것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겠는가?”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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