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다비 |
|---|---|
| 한자 | 茶毘 |
| 산스크리트어 | kṣapita |
| 팔리어 | jhāpita |
| 유형 | 용어 |
불교식 장례법으로, 화장(火葬)하는 일
산스크리트어 카사피타(kṣapita)의 음역으로 도비(荼毘), 사비(闍毘), 야유(耶維), 사유(闍維)라고도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분소(焚燒), 연소(燃燒)라고 한다.
불교 이전에도 인도에서 널리 행해진 장례법 가운데 하나로, 시체를 불태워 그 유골을 묻는 방법이며 화장이라 통칭한다.
『불설정반왕반열반경(佛說淨飯王般涅槃經)』에 부처님께서 부왕 정반왕의 장례에 화장을 행했음을 전한다. 부처님께서 화장을 채용한 이후 불교도들 사이에 화장이 보편화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화장만 행해졌던 것은 아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雜事)』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비구가 죽으면 응당 분소로 공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화장할 수 없으면 강물에 넣도록 해라. 마땅한 강물이 없으면 땅을 파서 묻으라.”라고 하여 경우에 따라 수장(水葬)·매장·임장(林葬) 등을 행할 것을 말하고 있다.
『장아함경(長阿含經)』의 「유행경(遊行經)」에서는 쿠시나가라 사라쌍수로 열반의 길을 나아가던 부처님은 장례법에 대하여 질문한 아난에게 “전륜성왕의 장법대로 하라.”라고 답하였다. 『불설관정총묘인연사방신주경(佛說灌頂塚墓因緣四方神呪經)』에는 전륜성왕의 장법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 전한다.
불교의 동점(東漸)과 함께 장례법은 중국에 널리 확산되어 화장이 보편화되었으며, 상례에 사용되는 기물, 의식, 차례, 복식 등 각종 제도가 정립되었다. 다비와 관련된 소동파(蘇東坡)의 일화가 전한다. 동파가 책을 보던 중에 등불 심지를 자르다가 심지 끝에 남은 불꽃이 책에 떨어져 ‘승(僧)’ 자를 태우자 즉흥적으로 지은 시에 “모르는 결에 심지 불꽃 떨어져, 한 스님의 다비를 치렀네.”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경우 다비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한다. “자장이 마침내 쓰러져 죽으니 다비하고 뼈를 석혈(石穴) 가운데 안치하였다.”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신라에서는 7세기경에 이미 다비가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세종 때 간행된 『다비작법(茶毘作法)』을 필두로 다비 관련 의식집이 다수 전한다. 이 가운데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와 『작법귀감(作法龜鑑)』, 『석문의범(釋門儀範)』 등은 한국불교의 다비 작법 실행에 주된 문헌으로 활용된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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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의 광음은 홀연히 봄날의 꿈이 되어 버렸고, 삼칠일의 다비(茶毘) 불은 가을 노을처럼 불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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