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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한글깨달음
한자菩提, 覺
산스크리트어bodhi
팔리어bodhi
유형용어
키워드아뇩다라삼먁삼보리, 무상정등각, 구경각, 아뇩보리, 무상보리, 삼보리
일체의 번뇌가 다하여 더 이상 윤회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아는 것
깨달음(bodhi)은 ‘깨어나다’, ‘알아채다’, ‘이해하다’라는 뜻의 동사 어근 ‘부드(budh)’에서 유래한 말이다. 보디(bodhi)는 아누타라삼마삼보디(anuttara-sammā-sambodhi)의 줄임말이다. 아누타라삼마삼보디는 한역으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 옮겨졌다. 보디(bodhi)를 수식하는 ‘아누타라삼마삼(anuttarasammā-sam)’은 ‘위없고 일체를 포괄하는 완전한’이라는 의미이다. 어원적으로 깨달음은 ‘일체의 번뇌가 다하여 더 이상 윤회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아는 것’을 말한다. 이를 무상정등정각이라 하여 위없고 일체를 포괄하는 완전한 깨달음이라 설명되었다. 깨달음은 다시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삼보리(三菩提, sambodhi)나 위없는 바른 깨달음이라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sammā-sambodhi) 등과 같이 깨달음을 수식하는 여러 말이 사용되기도 한다. 깨달음은 기본적으로 앎(ñāṇa)을 뜻하는 말로서, 모르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나 제대로 몰랐던 사실을 밝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원어인 보디(bodhi)는 한자문화권에서 보리(菩提)로 음역되었고, 각(覺)으로 의역되었다. 또한 어원적으로 보디(bodhi)와 붓다(buddha)는 같다. 깨달음은 불교의 중심 개념이다. 붓다는 깨달은 존재를 의미하며 또한 깨달음을 이룬 존재의 가르침을 불교라고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단 한 가지 종류의 깨달음(bodhi)만이 나타난다. 달리 말하면 독각불(pacceka-buddha)의 경우는 별도로 독각불의 깨달음(pacceka-bodhi)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붓다의 제자로서 열반을 성취한 아라한의 깨달음과의 차이도 강조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깨달음과 열반, 해탈은 같은 경지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사용된다. 초기불교 경전에 따르면 보살은 보리수 아래에서 최종적인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경전의 여러 곳에서 붓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내(또는 그)가 아직 보살로서 있을 때”라는 경구를 사용한다. 즉 깨달음은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마찬가지로 한역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붓다는 샛별이 떴던 새벽녘에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T1, 30a). 그런데 여기서 붓다가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특정한 가르침이 그때마다 깨달음의 내용으로 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연기법(緣起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에서 붓다의 모든 가르침은 연기법에 바탕한 가르침이라고 한다. 여기서 연기법은 단순히 세상과 인생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의미의 깨달음을 말하지는 않는다. 경전의 많은 곳에서 깨달음은 번뇌를 완전히 다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깨달은 경지를 말한다. 완전한 열반인 멸성제(滅聖諦)인 것이다. 또한 멸성제의 열반은 갈애(渴愛)를 완전히 소멸했다는 것이다. 즉 깨달음은 완전하게 해탈했음을, 일체의 괴로움이 다한 구경의 열반을 성취했음을 분명하게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지는 일시적인 해탈(sāmayikaṁ cetovimutti)이 아니라 어떠한 의심도 일어나지 않는 흔들릴 수 없는 해탈(akuppā me vimutti)이라고도 표현된다. 한 수행자는 일시적인 해탈을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결국에는 칼로 자살해 버렸다는 일화도 있다(SN. I, 120-122쪽). 또한 이러한 깨달음은 이미 현생에서 모든 번뇌를 소멸시킨 누진지(漏盡智, khaya-ñāṇa)로 나타난다. 나아가 누진지이기에 무생지(無生智, anuppādaññāṇa)임을 분명히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바른 지혜(sammappaññā)와 대비되는 체험지(體驗智, paccattam eva ñāṇa)로 나타난다(SN. Ⅱ, 115-118). 이 때문에 초기경전의 많은 곳에서 깨달음은 ‘보는 것과 아는 것(olokeyya)’과 대비되는 ‘몸의 체득(kāyena phusitvā)’의 문제로 설해진다. 본래의 의미에서 깨달음은 연기의 이치와 같은 단순히 인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깨달음은 이치적으로 아는 문제가 아니라 몸으로 모든 누(漏, āsava)를 다했음을 분명하게 아는 것으로 설해진다. 이 때문에 깨달음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열반이라는 용어를 통해 “이치에 대한 지혜가 먼저이고 이후 열반은 나중에 성취될 수 있다.”라고 한다(SN. Ⅱ, 124쪽). 후대 불교로 가면 깨달음은 다양하게 설명된다. 그렇지만 대략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성문(聲聞)의 깨달음, 독각불(獨覺佛)의 깨달음, 정등각불(正等覺佛)의 깨달음이 그것이다. 더 나아가 대승불교는 더욱 다양한 종류와 성격의 깨달음을 제시한다. 대승불교의 주요 논서 중 하나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깨달음의 차이를 불각(不覺), 상사각(相似覺), 수분각(隨分覺), 구경각(究竟覺)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 집필자 : 조준호

용례

관련자료

  • 초기불교의 궁극적 행복과 이상적 인간—인간의 완전성 개념을 중심으로
    학술논문 조준호 | 보조사상 | 52 | 서울: 보조사상연구원. | 2018 상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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