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공 |
|---|---|
| 한자 | 空 |
| 산스크리트어 | śūnya |
| 팔리어 | suñña |
| 티베트어 | stong pa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연기, 무자성, 불공 |
① ‘텅 빈,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의미 ② 『반야경』의 공 사상이나 중관 사상에서는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등의 의미
불교는 초기부터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깨달아야 할 대상을 집중해서 관찰함으로써 그에 대한 올바른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지(止, śamatha)와 관(觀, vipaśyanā)을 중요한 수행 방법으로 간주하였다. 그에 따라 공은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등과 함께 지관의 수행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중요한 지혜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공이 중요한 지혜로 여겨졌던 이유는 세간의 여러 사물을 공, 즉 ‘텅 빈 것,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올바르게 깨달아 앎으로써, 여러 사물에 대한 갈애와 집착을 끊어 버리고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불타는 『숫타니파타(Suttanipāta)』 제1119 게송에서 “항상 마음으로 염(念)해서, (어떤 사물을) 자아라고 집착하는 견해를 버리고, 세간을 공(空)이라고 관하라. 그러면 그는 죽음을 넘어설 것이다. 그렇게 세간을 보는 사람을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는데, 그 말의 의미는 세간을 ‘텅 빈 것 혹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깨달아 아는 수행자는 여러 사물에 대한 갈애와 집착을 끊어 버리게 되므로, 윤회를 넘어서서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 사리불은 『상윳타 니카야』 「계경(Sīlavanta-sutta)」(SN. 22:122)에서 “도반 콧티타(Koṭṭhita)여, 계를 지키는 비구는 집착의 대상인 오온(五蘊)을 무상, 고통, 아픔, 종기, 가시, 재난, 질병, 내가 아닌 것, 부서지는 것, 공한 것, 그리고 무아라고 이치에 맞게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는데, 이 말의 의미도 오온을 무상, 고, 공, 무아 등이라고 이치에 맞게 올바르게 생각하는 수행자는 갈애와 집착을 끊어 버리게 되므로, 윤회를 넘어서서 열반에 도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한편 부파불교의 논사들은 여러 법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여러 법의 실체적 존재성 혹은 불공(不空)을 주장하였는데, 그에 따라 그들의 학설은 아공법유(我空法有)설 혹은 법유설이라고 부른다. ‘아공법유’란 오온을 연으로 해서 시설된 자아 혹은 연기의 결과물인 복합적 사물들은 공이지만, 연기의 궁극적 원인인 여러 법들은 실체 혹은 불공인 것으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의 법유설은 여러 법의 실체적 존재성을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타가 설한 공의 가르침이나 유무중도설에 위배된다. 왜냐하면 실체로서 존재하는 사물은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없으므로 공이라거나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반야경』은 여러 법의 공을 주장하면서 부파불교의 법유설을 비판하였고, 중관학파의 개조인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년경)도 『반야경』의 공 사상을 계승하여 부파불교의 법유설을 비판하면서 일체법이 공이라고 주장하였다. 용수는 『반야경』에서 설하는 공을 연기와 무자성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하였다. 즉 모든 사물은 연(緣)에 의해서 발생하며, 연기인 사물에는 자성이나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불교 안팎의 여러 학파들에서 자성이란 인연에 의존하지 않고 결정되어 있는 ‘고정불변의 독자적인 실체나 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일체법은 연기이며 연기인 일체법에는 자성이나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야경』은 일체법을 공이라고 설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유식학파와 여래장 사상은 부파불교의 법유설을 비판하면서도 중관학파와는 다르게 일체법이 공임을 반대하고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원성실성(圓成實性), 그리고 불성(佛性)은 불공(不空)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불교의 여러 학파들은 공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집필자 : 남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