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 결집 |
|---|---|
| 한자 | 結集 |
| 산스크리트어 | saṃgīti |
| 팔리어 | saṅgīti |
| 유형 | 용어 |
| 키워드 | 불설, 칠엽굴, 삼장 |
붓다의 입멸 후 그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개최한 승가대회
산스크리트어 상기티(saṃgīti)의 의역어로 합송(合誦)이라고도 의역하는데, 후자가 원래의 뜻에 가깝다. 어원적 의미가 말해 주듯이, 결집은 붓다의 입멸 후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붓다의 가르침을 암송해 냄으로써 붓다의 말씀을 정리하는 승가대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결집을 진행한 이유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설(佛說)의 진위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불설을 확립하여 후세에 바르게 전승하려는 시도였다. 붓다의 입멸(入滅) 직후 진행된 제1차 결집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결집이 개최되었다.
① 제1차 결집은 붓다의 입멸 직후 500명의 아라한(阿羅漢)이 왕사성(王舍城, Ⓢ Rājagṛha) 교외 칠엽굴(七葉窟)에 모인 가운데 마하가섭(摩訶迦葉 Ⓢ Mahākāśyapa)의 주재로 열렸다. 아난(阿難 Ⓢ Ānanda)이 경(經)을, 우파리(優波離 Ⓢ Upāli)가 율(律)을, 그들이 듣고 기억하는 대로 외우고 다른 참석자들의 승인을 받아 확정하였다.
② 제2차 결집은 붓다의 입멸 후 100년경에 발생한 계율에 대한 이견(異見)을 해결하기 위해, 700명의 비구가 비사리(毘舍離, Ⓢ Vaiśālī)에서 모인 가운데 야사(耶舍, Ⓢ Yaśas)의 주재로 열렸다. 이 모임에서 비사리의 비구들이 자체적으로 행했던 열 가지 일에 대해 계율에 위반된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③ 3차 결집은 붓다의 입멸 후 200년경에 아소카왕(Ⓢ Aśoka)의 후원으로 마가다국의 수도 파탈리푸트라(Ⓢ Pātaliputra, 華氏城)에서, 1천 명의 비구가 모인 가운데 목갈리풋타 팃사(Ⓟ Moggaliputta Tissa)의 주재로 열렸다. 목갈리풋타 팃사는 불교 내부의 다양한 이설에 대한 표준설을 제시하기 위해 『카타밧투(Kathāvatthu)』를 지었고, 이로 인해 제3차 결집에서는 삼장(三藏)이 집성되었다. 제1차 결집과 제2차 결집은 남방불교와 북방불교에 모두 전해지고 있지만, 제3차 결집은 오직 북방불교에서만 전해지고 있다.
④ 제4차 결집은 북전과 남전의 내용이 다르다. 북전에 따르면 2세기경 카니슈카왕(Ⓢ Kaniṣka)의 지원 아래, 카슈미르(Ⓢ Kaśmira)에서 500명의 비구가 모인 가운데 파르슈바(Ⓢ Pārśvā, 脅尊者)와 바수미트라(Ⓢ Vasumitra, 世友)의 주재로 열렸다. 함께 논을 짓고 삼장을 해석하였는데, 이 모임에서 성립된 것이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이라고 한다. 이 결집은 남방불교에서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남전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경 스리랑카에서 밧타가마니왕(Ⓟ Vaṭṭagāmaṇi)이 통치하던 시기에 500명의 비구가 모여 삼장과 삼장에 대한 주석서를 문자로 기록하였다.
· 집필자 : 신행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