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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굴암

토굴암(土窟庵)은 마곡사에서 북서쪽으로 700m 떨어진 산내 암자이다. 마곡사 주차장에서 생골길을 따라 30여 분 걸으면, 길 끝에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토굴암에는 암자의 주불전(主佛殿) 관음전(觀音殿)을 비롯해, 모두 4동의 건물이 있다. 관음전은 석축 위에 남동향으로 앉은 건물이다. 건물 전면에 〈관음전(觀音殿)〉 편액과 성도재산림식(成道齋山林式) 때 부르는 게송[1]성도재산림식(成道齋山林式) 때 부르는 ‘송자(頌子)’ 게송[偈]은 다음과 같다. 원각산 가운데 자라난 나무 한 그루(圓覺山中生一樹)/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도 전에 꽃 피웠네(開花天地未分前)/ 푸르지도 희지도 않고 또 검지도 않은데(非靑非白亦非黑)/ 봄바람에도 하늘에도 없다하네(不在春風不在天).을 새겨 넣은 주련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불단(佛壇)·산신단(山神壇)·신중단(神衆壇)이 갖추어져 있고, 불단 위에는 〈불좌상(佛坐像)〉 2구와 〈탄생불입상(誕生佛立像)〉 1구가 봉안되어 있다. 그중 중앙에 주존불(主尊佛)로 봉안된 〈불좌상〉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結)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이 석가모니 부처님 상(像) 왼쪽에 모셔진 소형의 백색 불상은 수인(手印으로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화불(化佛)을 머리에 얹은 모습이다. 화불은 연화대좌와 광배를 갖추고 있다. 상의 모습을 볼 때, 머리에 보관(寶冠)을 착용한 밀교 계통의 비로자나 부처님 도상(圖像)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관음전에는 모두 5점의 불화가 모셔져 있다. 관음전 불화는 1946년 8월 후불도(後拂圖)로 봉안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같은 날 봉안된 왼쪽(서쪽) 신중단의 〈신중도(神衆圖)〉, 1989년 4월 봉안된 〈칠성도(七星圖)〉와 산신단의 〈산신도(山神圖)〉, 봉안 시기 미상의 〈독성도(獨聖圖)〉이다. 관음전 내부 남동쪽 면, 창방과 상인방 사이 벽에 〈토굴암 법당 중건 봉불 시주록(土窟庵法堂重建奉佛施主錄)〉(1989) 현판이 부착되어 있다. 이 시주록에는 상량 일시(上樑日時), 시주자·암자의 소임자·장인(匠人)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1989년 3월 토굴암의 법당(관음전) 중건을 위해 상량하였으며, 25명이 참여하여 법당 중건과 함께 부처님 상을 봉안한 것을 알 수 있다. 관음전 석축 아래에는 남동향으로 앉은 요사 1동 있고, 이 요사의 동쪽(오른쪽)에는 새로운 요사 건물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고 준비 중인 부지가 있다. 본래 이 부지에는 공부방으로 사용되던 요사가 있었는데, 2012년경 폐가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2]마곡사지 집필위원회, 『마곡사지(麻谷寺誌)』, 공주시; 마곡사; 한얼문화유산연구원, 2012, 227쪽.. 토굴암에는 이 밖에도 벽체 없이 지어진 전통 목조 건물 2동이 더 있다. 토굴암은 어산(魚山)[3]범음(梵音)이나 범패(梵唄) 등 불교 의식용 음악.의 대가로 이름 높았던 용음 법천(龍吟法泉, 1887~1951) 스님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용음 법천 스님은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토굴암에서 주석하면서, 간화선(看話禪) 중심의 선풍을 진작시켰다고 한다. 1948년 다시 토굴암에 돌아와 정진하다, 1950년 이곳에서 원적(圓寂)에 들었다.
관련주석
  • 주석 1 성도재산림식(成道齋山林式) 때 부르는 ‘송자(頌子)’ 게송[偈]은 다음과 같다. 원각산 가운데 자라난 나무 한 그루(圓覺山中生一樹)/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도 전에 꽃 피웠네(開花天地未分前)/ 푸르지도 희지도 않고 또 검지도 않은데(非靑非白亦非黑)/ 봄바람에도 하늘에도 없다하네(不在春風不在天).
  • 주석 2 마곡사지 집필위원회, 『마곡사지(麻谷寺誌)』, 공주시; 마곡사; 한얼문화유산연구원, 2012, 227쪽.
  • 주석 3 범음(梵音)이나 범패(梵唄) 등 불교 의식용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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