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초부 적음(1900~1961)

초부 적음(草夫寂音, 1900~1961) 스님은 일제강점기 한국 불교 수호, 해방 후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마곡사의 주지를 역임한 스님이다. 김적음(金寂音)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적음 스님은 경북 군위군 효령면 출신으로 1924년 직지사에서 제산 정원(霽山淨圓, 1862~1930)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1930년 만공 월면(滿空月面, 1871~1946) 스님은 적음 스님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는 만공 스님이 제자로 받아들일 만큼 스님의 수행이 깊었음을 알려준다. 스님은 출가하기 이전에 한의학을 배웠고, 신침(神鍼)으로 불릴 만큼 의술에 뛰어났는데, 이러한 스님에게 1936년 만공 월면 스님은 ‘풀을 갖고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이’라는 의미의 초부(草夫)라는 법호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적음 스님은 1931년 선학원(禪學院)을 인수하여 만공 스님과 함께 활동하였다. 스님은 당시 경제적 여건 등으로 활동을 멈추었던 선학원 재건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선학원은 1934년 12월 5일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인가받았다. 이때 만공 스님은 이사장, 적음 스님은 상임이사의 직책을 맡았다.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은 임제(臨濟)의 간화선(看話禪) 전통을 계승한 선(禪) 이론을 보급했고, 매주 일요일에 불교도들에게 설법을 행하는 등 포교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한편, 선학원은 1935년 3월 7일 조선불교전국수좌대회(朝鮮佛敎全國首座大會)를 개최하고 조선 불교 선종 종무원을 발족시켰는데, 만공 스님 등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으며, 적음 스님은 이사의 직책을 맡았다. 또한 매년 전국수좌대회를 개최했고, 1941년 2월 ‘청정승풍’과 ‘전통선맥’을 선양하기 위한 ‘유교법회(遺敎法會)’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처럼 적음 스님은 선학원을 매개로 하여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불교를 수호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9일 일제 치하의 기존 종단 간부들이 사직하고, 이들의 업무를 조선 불교 혁신 준비위원회가 인계받게 되었다. 이때 적음 스님은 참획부 위원장을 맡아 종단 개혁에 착수했다. 이후 적음 스님은 마곡사와 인연을 맺었다. 스님의 제자인 서운(瑞雲, 1903~1995) 스님은 1950년 마곡사에서 적음 스님을 사미 계사로 하여 출가하였다고 하여 이 무렵 적음 스님이 마곡사에 주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스님은 1955년 마곡사의 주지직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스님의 스승인 만공 스님이 마곡사의 주지(1935~1938년)를 역임하는 등 마곡사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음 스님은 마곡사 주지직을 수행하면서 일제 식민지 불교의 잔재를 제거하기 위한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제자인 서운 스님 역시 정화 운동의 중심에서 활약하였다.

관련기사

관련자료

  • 도서 마곡사지집필위원회;공주시;한얼문화유산연구원 편 | 마곡사지집필위원회;공주시;한얼문화유산연구원 편 | 2012 상세정보 출처
  • 더보기  +

지리정보

    • 내용
  • 위로
  • 불국토
    문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