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대사(聾山大師, ?~1789)는 마곡사의 중창주인 제봉 체규(霽峰體奎 혹은 체주體珠, 생몰년 미상)의 스승이며, 대구 파계사(把溪寺)에서 기도하여 숙빈 최씨(淑嬪崔氏, 1670~1718)로 하여금 영조(英祖, 재위 1724~1776)를 낳게 한 것으로도 알려진 스님이다.
「태화산 마곡사 사적입안(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1851)에 따르면 1789년(정조 13) 농산대사는 당시 왕대비(王大妃)였던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의 초빙으로 궁에서 원자 탄생을 위한 천일기도를 행하였다고 한다.
농산대사는 밤마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렸는데, 스님은 이를 마치지 못하고 1789년 8월 초 9일 밤에 입적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밤 궁인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목에 염주를 걸고 몸에는 가사를 입고 손에는 육환(六環)과 금 지팡이를 쥐고 표연히 궁중에 들어와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또 꿈속의 노승은 이윽고 용으로 변하여 가신궁(嘉頣宮)을 둘러쌌는데, 이후로부터 푸른 연기와 신령한 빛깔이 뭉게뭉게 모여들어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농산대사가 마치지 못한 천일기도는 스님의 제자였던 체규 스님이 이어받았고, 체규 스님이 천일기도를 마치자 그 공로로 승통(僧統)의 직위를 맡겼으며, 농산대사, 체규 스님 두 스님에 대한 보답을 막중하게 내렸다고 전한다.
두 스님의 천일기도에 힘입은 탓인지 다음 해인 1790년(정조 14) 6월 18일 순조가 탄생하였다. 이후 1795년(정조 19) 마곡사는 국왕 등에게 바치는 종이를 만드는 지소(紙所)의 기능이 폐지되어 마곡사 승려들의 노역이 면제되는 혜택을 받았다. 또한 마곡사는 순조의 태를 묻은 태실(胎室)로 봉해지고 도내 수사찰(首寺刹)의 직인까지 받게 되어 그 위상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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