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 하편에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사찰들의 사적을 고찰한 여지승람사적(輿地勝覺事蹟)이 있다. 그리고 이 여지승람사적에는 마곡사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 여기에서는 마곡사가 태화산(泰華山)에 위치하고 있음과 마곡사 오층석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오층석탑에는 구리로 덮어씌운 머리장식이 있고, 세간에서는 이를 보물로 여긴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능화는 마곡사란 사찰 이름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여기에서는 기존 두 가지 설을 소개하였는데, 첫 번째는 마곡사를 처음 창건한 신라 보조선사의 도행이 뛰어나 그에게 수학한 자가 골짜기(谷)에 삼대(麻)처럼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래 마곡사가 위치한 자리는 마씨(麻氏) 성을 가진 도적의 근거지였는데, 그들을 다른 곳으로 몰아내고 사찰을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능화는 이 두 설은 신빙성이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설을 제시하였다. 즉 신라의 무염국사(無染國師, 800~888)가 당나라에 가서 마곡 보철(麻谷寶徹, 생몰년 미상) 스님에게 수학한 뒤 이 사찰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는데, 무염국사가 그의 스승을 기리는 마음에서 사찰의 이름을 마곡이라고 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능화가 제시한 마곡사란 이름에 대한 기존의 두 가지 설은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1851) 등 마곡사의 사적들과 일정한 차이가 있다. 즉 「태화산 마곡사 사적입안」 등에서는 마곡사의 창건주를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 스님이 아니라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스님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도적들과 관련된 모티브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의 마곡사 중창에서 살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가 왜 생겨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마곡사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전승되는 과정 속에서 뒤섞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능화가 직접 제시한 마곡사의 이름이 마곡 보철과 관련 있다는 설은 「태화산 마곡사 사적입안」에서 자장율사 스님 때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이능화가 자장율사 스님의 생몰년과 마곡 보철 스님의 활동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를 마곡 보철 스님에게 수학한 무염국사의 일로 파악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았을 때, 이능화는 당시까지 전해져 내려오던 마곡사에 대한 여러 전승들을 수합·정리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불교통사』 하편, 여지승람사적의 원문은 CBETA 線上閱讀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번역본은 동국대학교출판부에서 간행한 『역주 조선불교통사』 5에 수록되어 있다.
번역문
○공주 마곡사(麻谷寺)는 태화산(泰華山)에 있다. 절에는 탑이 하나 있는데, 꼭대기를 구리로 덮어 씌웠다. 세상에서는 이 탑의 덮개는 보물이라고 전한다.
상현이 이 절의 사적을 고찰해 보니, ‘마곡’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유래에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처음 창건한 사람【신라 보조선사(普照禪師)】의 도행이 고상하여, 그에게 가서 공부한 자가 골짜기(谷)에 삼대(麻)처럼 들어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이 절터가 본래 마씨(麻氏) 성을 가진 도적의 근거지였는데, 그들을 다른 곳으로 몰아내고 절을 지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둘 다 신빙성이 없다. 나에게도 하나의 설이 있으나 틀린 해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무염국사(無染國師)가 당나라에 들어가 마곡 보철(麻谷寶徹) 선사에게 심인心印을 얻고 돌아와서 웅천(熊川)【지금의 공주】에 머물렀다가 성주사(聖住寺)로 갔다.【절의 본래 이름은 오합사(烏合寺)였는데, 국사가 머문 인연으로 성주사로 개명하였다.】 그렇다면 그때 국사가 이 절에 와서 머물렀을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국사가 그의 스승을 사모하는 마음에서 ‘마곡’이라 지은 듯하다.
원문
○公州麻谷寺 在泰華山 寺有一塔 以銅為冠以蓋之 世傳此塔之蓋 為貴物云云尚玄按本寺事蹟 寺以麻谷為名者 有二說焉 一以為 初剏之人【新羅普照禪師】道行高詣 參學者多如谷中之麻故名 一以為 寺本麻姓賊所據之地 驅逐他處 而創寺故名 二皆不類焉 吾有一說 未免杜撰 蓋無染國師入唐得麻谷寶徹禪師心印而還 住熊川【今公州也】之聖住寺【寺本名烏合因國師故改聖住】則或時來住本寺 所可推想也 則因思慕其師 名以麻谷者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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