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태화산 마곡사 나한전 중건기(公主太華山麻谷寺羅漢殿重建記)」는 1852년(철종 3)에 제작되었으며, 화담문인(華潭門人) 경월 쾌수(鏡月快守, 생몰년 미상) 스님이 찬한 것이다. 나한전의 현판은 「마곡사 응진전 신불량시주 방명록(麻谷寺應眞殿新佛粮施主芳名錄)(1846)과 본 중건기가 적힌 현판 두 개가 있다. 그중 이 글은 1851년(철종 2) 경순(敬淳, 생몰년 미상) 스님의 주관하에 진행된 나한전의 중건을 담고 있는데, 기문에 의하면 나한전 중건은 신해년(1851, 철종 2) 정월부터 노역을 시작하여 다음해(1852, 철종 3) 3월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또한 찬자인 경월 쾌수 스님은 눈으로 직접 보는 자들을 위해서 이 나한전 중건기를 작성하였음을 밝혔다. 나한전은 오래되어서 금방 부서지고 허물어질 듯했으나 많은 기물과 공력이 들기에 아무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한 상태였는데, 경순 스님이 적극 힘을 써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하며 특별히 화주의 노고를 기렸다. 기록 의도에서 밝힌 것처럼 직접 눈으로 보는 자들에 의해 화주의 업적과 수고가 길이 기억되고 사찰의 업이 사라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경순 스님은 금파 묘화(錦波妙華, 생몰년 미상) 스님의 증손 제자이자 홍계 영일(洪溪永日, 생몰년 미상) 스님의 손제자이며, 인월 지행(印月智幸, 생몰년 미상) 스님의 상좌(上佐)이다.
이어 대시주질과 목수질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시주자로 기록된 홍열모(洪說謨, 1804~?)는 충청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시주를 하였고, 이후 예조판서(禮曹判書)·병조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하기도 한 인물이다. 또한 도화원(圖畵員) 상렴(尙濂)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주를 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목수질에 의하면 장인들을 통솔한 도편수는 이근후(李根厚)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나한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65호로 지정된 현재의 응진전을 말한다. 응진전과 나한전 둘 다 석가모니 제자인 아라한들을 봉안하는 건물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마곡사 사찰 내의 기록을 보면 나한전(羅漢殿) 혹은 나한당(羅漢堂)이라는 전각명을 쓴 경우가 더 많다. 또 쇠락함이 오래되었지만 아무도 쉽게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고, 어렵게 시작한 공역이 약 14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것을 보면 당시 나한전 중건 공사가 비교적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현재 응진전 내부에 걸려 있다.
번역문
공주 태화산 마곡사 나한전 중건기
기(記)는 일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 일을 기술함은 이후에 와서 눈으로 직접 보는 자들을 위해서 짓는 것이다. 지금 이 나한전은 전각이 오래되어 부서지고 허물어져 감히 경영을 시작하려는 자들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경순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바로 금파화상의 증손 제자이며 홍계화상의 손제자이며, 인월스님의 상좌이다. 이 전각의 중건의 경영은 신해년(1851) 정월부터 노역을 시작하여 다음해 3월에 완공을 알리게 되었다. 중건에 사용된 것들을 헤아려 보면, 기물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고, 공력은 귀신을 부린 것이 아니다. 이 나한전의 새로운 건립은 모두 경순 화주로 인연하여 힘을 쓴 공덕이다. 대략적으로 일의 전말을 기록함은 사라져버리지 않는 사찰의 업으로 삼기 위함이다.
함풍 2년 임자년(1852, 철종 3) 3월일 화담문인 경월 쾌수 삼가 기록하다
시주질 생락
원문
公州泰山麻谷寺羅漢殿重建記記
記事也 述其事以作後來之眼目睹也今此殿宇年久頹圯無 敢經始者矣 有一沙門敬淳者即錦波和尙之曾孫 洪溪和尙之孫也印月之上也經營此股之重建自辛亥 正月始役至明年三月 告訖 計其所八則物非天来功 不役鬼此股之新建都綠敬淳化士勤力之功也 略草顛末以爲不墜之寺業焉咸豐二年壬子三月日華 潭門人月快守誌大施主觀察使洪相國說 字謨字帖下百兩比丘尼尙燁百兩溫洞李進士 七雨幼學兪東十坤命豐川任氏乙卯生三十 丽金宗義丙寅生十雨崔元子泰石丙午生十 雨白同哲丁卯生十雨朴根成坤命康氏癸亥生五 兩鄖重鉉五兩金萬根五兩印月堂十兩 比丘尼奉欣十八兩比丘尼取欣十兩比丘尼善弘 十雨比丘尼壯淑五兩都具尙源無手功而爲 之木手秩都片手李根厚李文伯李文湖金 定淑徐義能朴春三李永元朴價淑韓浮 卜軍金有福盧道令時儈統德信中老少 碩德文煩不錄家役所物六百四十三兩丹青所八百 四十三都合七百八十六雨內三百六十一兩自願 施物也四百二十五兩敬淳自己之物當此末葉無 軸而成事世所希有甭時大光寶殿翻尾同時設役所 八八十兩内五十兩尙比丘尼亦為當之三十雨自 寺中之而亦是敬淳勤勞之所格山野共云南與 聖樓解脫門運亦重修而寺中無一金補給而成 之尤可賞尤可歎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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