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화상(三和尙)은 한국 불교사에서 특정한 세 승려를 함께 일컫는 말로, 시대와 맥락에 따라 여러 용례가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여말선초에 활동한 지공·나옹 혜근·무학 자초 스님을 가리킨다. 세조-성종 무렵부터 이들을 삼화상으로 칭하며 신격화하려는 경향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사찰에서는 삼화상 진영을 따로 모셔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17세기 이후 간행된 불교의식집에서는 삼화상이 증명법사(證明法師)로 모셔지거나 조사예참(祖師禮懺)의 대상이 되어 의례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전하는 여덟 점의 진영에는 이러한 흐름이 반영되어 있으며, 특히 가사 표현은 조선 후기 가사 착용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의성 대곡사 삼화상 진영 (국가유산포털)
<표> 현존 지공·나옹·무학 삼화상 진영 현황
| 번호 | 소장처 | 조성시대 | 형식 |
|---|---|---|---|
| 1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 | 1782년 | 1폭 통합 |
| 2 | 황해북도 개성시 용흥동 화장사 | 18세기 | 1폭 통합 |
| 3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 1807년 | 3폭 개별 |
| 4 |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 | 19세기 | 3폭 개별 |
| 5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지 박물관 | 19~20세기 초 | 3폭 통합 |
| 6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사 | 19~20세기 초 | 1폭 통합 |
| 7 |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 | 19~20세기 초 | 1폭 통합 |
| 8 | 전라남도 순처지 승주읍 선암사 | 1904년 | 1폭 통합 |
가사의 형태 ― 겹가사와 홑가사
삼화상 진영의 가사는 크게 겹가사와 홑가사로 나뉜다. 대곡사와 화장사, 선암사 진영에서는 겹가사가 주를 이루며, 겉감은 홍색, 안감은 녹색이나 청색 등으로 달리하여 대비를 주었다. 불암사와 용문사 진영에서도 겹가사에 금니 문양을 더해 장식성을 높였다. 반면 통도사, 신륵사, 회암사 진영에서는 홑가사가 묘사되었다. 홑가사는 복부에서 접힘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좁고 직선적인 모습이 특징이다. 여기서 겹가사와 홑가사가 함께 나타나는 것은 특정 시기의 절대적 규범이라기보다 각 사찰과 화승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가사의 색채와 장식 ― 홍색 일관성과 문양 변주
삼화상 진영에서 가사는 일관되게 홍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는 조선후기에 홍가사가 일반화된 현상을 반영한다. 겹가사의 경우 안감에 남색, 녹색, 청색 등 다른 색을 배치하여 겉감의 홍색과 대비가 드러났다. 장식 면에서는 진영마다 개성을 보인다. 선암사 진영에서 중앙에 위치한 지공의 복식은 홍가사 위에 동심원점문이 있는 덧옷을 입고 있다. 불암사 진영에서는 금니 원문(圓文)을, 용문사 진영에서는 원권문(圓圈文)을, 회암사 진영에서는 당초문(唐草文)과 화문(花文)을 장식했다. 특히 19세기부터는 가사 끝에 천왕문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 일반적인 조선 후기 가사의 변천과 양상을 같이한다. 이처럼 홍색의 일관성 속에서도 사찰별로 다양한 문양을 통해 개성을 드러냈으며, 전체적으로는 후대로 갈수록 장식이 점차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사의 착의법과 고정 방식 ― 편단우견과 영자·금구
삼화상 진영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이 기본적인 착용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만 대곡사 진영의 무학이나 용문사 진영의 지공처럼 일부 존상에서는 어깨를 드러내지 않는 통견 형식으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특정 인물을 다른 두 인물과 구별해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가사 고정에는 영자 매듭과 원형환과 빗장으로 구성된 금구장식이 함께 사용되었다. 대곡사 진영에서부터 두 방식이 함께 나타났으며, 이후 다른 진영에서도 이러한 혼용 양상이 이어졌다. 이는 조선후기 가사 고정에 일률적인 규범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찰과 화승이 상황에 따라 방식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삼화상 진영 가사의 정형화와 그 의미
삼화상 진영의 가사 표현은 겹가사와 홑가사의 공존, 영자와 금구 장식의 병행, 천왕문첩과 각종 문양 장식의 도입을 통해 조선 후기 가사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찰과 화승에 따라 세부적으로 다르게 적용되었으나, 전반적으로는 조선 후기 가사 양식의 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삼화상 진영은 인물마다의 개별적 특징보다는 세 인물을 하나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개별 인물의 개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삼화상이라는 정형화된 도상 속에서 가사의 장엄성과 권위가 더욱 두드러지게 강조되었다.
양산 통도사 삼화상 진영 (국가유산포털)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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