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산사(高山寺)가 소장하고 현재 국립교토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인 원효(元曉) 진영은 현존하는 원효의 초상 중 가장 연원이 깊다. 가로 52.6cm, 세로 102.1cm의 비단에 채색된 족자 형태의 이 진영은 15세기 일본 무로마치 시대에 이모(移模)된 본이지만, 화폭에 흐르는 기법과 양식은 고려시대 승려 진영의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불교 회화사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된다.
일본 고산사 원효대사 진영 (Wikimedia Commons)
진영의 도상적 특징과 구성
진영은 오른쪽 얼굴이 7할 정도 드러나는 우안칠분상(右顔七分像)의 형식을 취한다. 등받이가 있는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단전(丹田)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원효대사를 표현했으며, 의자 아래 족좌(足座)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구도이다.
인물 묘사에서는 원효대사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갈색 톤의 얼굴에는 수행의 깊이를 보여주는 주름선과 콧수염, 턱수염, 구레나룻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전형적인 고승의 모습이라기보다,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민중 속에서 무애행(無碍行)을 실천했던 원효대사의 소탈함과 파격을 시각화한 것으로 읽힌다. 반면 의자의 등받이를 덮은 비단에는 화려한 연화원문(蓮花圓紋)과 당초문이 그려져 있어, 소박한 인물 묘사와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가사의 형태적 특성
진영 속 원효대사의 복식은 장삼 위에 가사를 수(垂)한 전형적인 승려의 차림이다. 가사는 조(條)와 제(堤)가 밭둑 모양으로 명확히 구획된 전상의(田相衣)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단의 구성은 약 9조(條) 내외로 확인된다. 고려 숙종 대에 원효대사가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로 추증되었음을 상기하면, 국사의 위의에 해당하는 화려한 25조 대가사가 아닌 9조 가사를 착용한 점은 이례적이다. 이는 형식적인 권위보다 민중 속에서 무애(無碍)의 삶을 살았던 원효 스님의 생애와 정체성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가사의 색채는 화려한 원색을 지양하고 차분한 황토색과 갈색을 중심으로 사용하여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옷주름에는 선묘와 함께 옅은 명암을 더해 직물의 부드러운 양감을 살렸으나, 현재는 안료의 퇴색으로 인해 다소 평면적이라 평가된다. 특히 가사 안쪽의 동정과 소맷단에는 본래 백색의 호분(胡粉)[1]조개껍데기를 빻아 만든 동양화의 전통적인 흰색 안료. 이 진영에서는 짙은 가사 색과 대비를 이루어 의복의 청결함과 시각적 선명함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이 두껍게 칠해져 있었으나, 오랜 세월을 거치며 안료가 박락(剝落)되어 비단 바탕의 거친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의자 아래 족좌(足座)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 또한 눈여겨볼 대목이다. 검은색 가죽으로 앞코에 방울이 달린 형태를 지닌 이 신발은 송나라 서긍(徐兢)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묘사한 고려 승려의 신발 양식인 오피흑화(烏皮黑靴)와 그 형태가 부합한다.
전승과 보존
이 진영은 60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며 여러 차례의 보수를 겪었다. 현재 인물이 화면에 꽉 차 보이는 것은 후대의 수리 과정에서 훼손된 가장자리가 잘려 나갔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족자 뒷면 하단에 남은 “1761년 대승정 유증(宥證)이 보수하였다”[2] 김범수(2011), 「교토 고산사소장 원효화상 진영의 현상모사」,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47,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71쪽. 는 묵서는, 바다 건너 일본에서 원효가 추앙받으며 오랜 세월 귀중한 성보로 전승되어 왔음을 증언하고 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조개껍데기를 빻아 만든 동양화의 전통적인 흰색 안료. 이 진영에서는 짙은 가사 색과 대비를 이루어 의복의 청결함과 시각적 선명함을 주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 주석 2 김범수(2011), 「교토 고산사소장 원효화상 진영의 현상모사」, 『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47,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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