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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사명대사 가사와 장삼

사명대사 유정(泗溟 惟政, 1544-1610)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스님이 실제로 착용한 법복이다. 1593년 1월 사명대사는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으로 평양 전투에 참전하여 평양 탈환에 큰 공을 세우고, 이후 3월 서울 노원평 전투에서도 공을 세워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제수되었다. 이 가사와 장삼은 선조가 이러한 임진왜란 공로를 인정하여 사명대사께 하사한 것이다. 현재 국가민속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경상남도 밀양시 표충사에 보존되고 있다.
표충사 사명대사 가사 부분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금란가사의 구조적 특징 사명대사 금란가사는 25조 4장 1단으로, 크기는 너비 270cm, 길이 84cm이다. 현재는 누런색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붉은기가 남아 있어 홍색의 단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품계별로 보면 상상품(上上品)이며, 가사의 박음질은 1cm 안에 10~12땀의 온박음질을 한 홑가사이다. 가사의 착장구는 환과 빗장으로 된 금구이다. 원형환(圓形環)의 외경(外徑)은 9.8㎝, 내경(內徑)은 3.8㎝이며 보상연화문(寶相華文)이 조각되어 있으며, 빗장은 16.2 × 3.6㎝로 중앙에는 범자문(梵字文)이 있고 양옆에는 보상연화문을 타출하여 양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통도사 소장 자장율사가사의 착장구 빗장장식과 같은 형태이다. 금란가사의 직물 소재와 문양 사명대사 금란가사는 5매 주자직(朱子織)으로 짜여진 문단(紋緞)으로 제작되었다. 주자직은 날실 또는 씨실이 다섯 올 이상 건너뛰는 방식의 직조법으로, 조직점을 분산시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뛰어나다. 5매는 날실을 5가지 방식으로 교차시켜 짜는 기법이다. 문단은 이러한 주자직 조직으로 무늬를 표현한 고급 비단직물을 가리킨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는 원래 황금색의 중국 비단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담황색으로 변색되었으며, 여러 곳이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직물의 문양은 모란과 매죽, 팔보문(보·화염보주·서각·전보·방승·산호·서보·여의문)이 어우러진 절지화보문(折枝花寶紋)이다. 절지화보문은 꺾인 가지에 꽃과 보배 문양을 조합한 것으로,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매화와 대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팔보문은 길상과 복을 상징한다.[1]이러한 문양 조합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조선 왕실 직물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강선정·조우현, 「조선중기 이후 가사(袈裟)의 유형과 변천」, 『복식』 64권 2호, 2014, 19-22쪽. 장삼의 구조와 제작 특징 장삼(長衫)은 가사와 함께 착용하는 승려의 기본 법복이다. 불교복식의 생성 과정을 보면 남방지역은 기후적 조건으로 인해 안타회, 울다라승, 승가리 삼의가 승려의 기본 복식이었다면, 북방지역에서는 기후적, 문화적 상황이 현저히 달라 복식이 추가되어 발전한 것이 지금의 장삼이다. 고려시대에는 상의인 편삼(偏衫)과 하의인 상(裳)을 따로 착용하기도 했으나, 고구려 고분벽화에 흑색 포(袍)를 착용한 승려가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가 한국에 전래될 때 이미 가사와 장삼이라는 법복의 형식이 제도화 된 것으로 보인다. 사명대사 장삼은 염색하지 않은 흰색 면포(綿布)로 제작되었으며, 상의와 하의를 허리에서 연결한 직철(直綴) 형태이다. 총길이 142cm, 상의 52cm, 하의 90cm로, 사명대사의 체구가 컸다는 구전을 뒷받침해 주는 유물이다. 깃은 직령(直領)으로 너비 13cm의 목판깃이 하의가 연결된 부분까지 이어져 있으며, 소매는 넓은 소매로 폭 35cm의 면포 3폭을 이어 만들었다. 화장(팔 길이)은 134cm, 수구(소매 끝) 85cm로 매우 넓고 긴 형태이다. 치마 부분에는 너비 4.5cm의 맞주름이 8개 잡혀 있어 풍성한 형태를 이룬다. 색이 퇴색되고 여러 곳이 훼손되었으나 전체적인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다. 가사와 장삼이 함께 전하는 실물 가사 사명대사 금란가사와 장삼은 착용자가 명확한 16세기 말~17세기 초 실물 승복이다. 가사와 장삼이 함께 전하는 사례가 드물어, 조선 중기 승려의 법복 구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금란가사는 왕실 하사품의 직물 제작 기술을, 장삼은 승복의 형태와 구조를 보여주는 복식사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
표충사 사명대사 장삼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 집필자 : 수행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이러한 문양 조합은 16세기 말~17세기 초 조선 왕실 직물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강선정·조우현, 「조선중기 이후 가사(袈裟)의 유형과 변천」, 『복식』 64권 2호, 2014, 19-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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