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 금란가사는 임진왜란 공로를 기려 선조가 하사한 가사이다. 현재 대흥사에 전하는 <선조대왕하사 교지(宣祖大王下賜敎旨)>(1602)는 서산대사를 '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一都大禪師禪敎都總攝)'으로 임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사를 하사받은 시기도 이 무렵으로 추정되며, 최고 고승에게 국왕이 금란가사를 하사하는 전통에 따른 것이다. 서산대사 금란가사는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어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대흥사 서산대사 금란가사_서산대사 유품 일괄 (국가유산포털)
구조적 특징과 가사의 격식
가사의 구성을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조수(條數)는 21조 4장1단으로, 너비 237.3㎝, 길이 93.5㎝이다. 주복을 중심으로 보면 열 번째 좌복 , 좌변복이 탈락된 상태이다. 열 번째 우복, 우변복의 크기를 참고하여 23조의 치수를 낸 결과 너비 261㎝, 길이 93.5㎝이다. 위의 가사는 주복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형이기 때문에 탈락된 것을 알 수 있으며, 치수도 추측해 볼 수 있다. 품계별로 보면 상중품(上中品)에 속하는 팔보문이 시문된 직금단의 겹가사이다.
직물 소재와 제작 기법의 특징
서산대사 금란가사의 가장 큰 특징은 직금단(織金緞)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직금단은 비단 바탕에 금실을 직접 짜 넣어 무늬를 표현하는 고난도 직조기법으로, 단순히 금실을 수놓는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내구성이 뛰어나다. 겉감은 황금색 비단, 안감은 보라색 비단으로 제작된 겹가사 구조를 보인다. 현재 왼쪽 일부가 소실된 상태로 전해지고 있으나, 남아있는 부분을 통해서도 당시 최고 수준의 직물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금실의 광택과 색상이 4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제작 당시 사용된 재료의 우수성을 입증한다.
팔길상문과 문양의 상징적 의미
서산대사 금란가사의 가장 뛰어난 예술적 특징은 불교의 상징 문양인 팔보문(八寶紋)을 시직한 옷감을 사용한 것이다. 팔보문은 연화(蓮華), 금어(金魚), 보산(寶傘), 백개(白蓋), 법륜(法輪), 법라(法螺), 법승(法繩), 보병(寶甁) 등 여덟 가지 길상 문양으로 구성되며, 지혜와 복덕을 상징한다. 서산대사 가사에는 일반적인 팔길상문에 여의문(如意紋, 여의형 구름문)을 추가하여 아홉 가지 보배 무늬로 장식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러한 문양 조합은 중국 명대(明代)에 팔보문이 유행하면서 직금단 기법과 함께 조선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1]강선정·조우현(2014), 「조선중기 이후 가사(袈裟)의 유형과 변천」, 『복식』 64(2), 한국복식학회, 88쪽. 이런 점에서 서산대사 금란가사는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명나라와의 활발한 문화교류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불교 직물공예사의 중요한 유산
서산대사 금란가사는 조선 중기 불교 직물공예사 연구의 핵심 자료로서, 당시 왕실 하사품의 품격과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16세기 말~17세기 초 한중 문화교류사, 직물사, 불교공예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학술 가치를 지닌다.
서산대사 휴정 스님께 내린 선조의 교지 (국가유산포털)
· 집필자 : 수행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강선정·조우현(2014), 「조선중기 이후 가사(袈裟)의 유형과 변천」, 『복식』 64(2), 한국복식학회,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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