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근현대 시기 가사는 제도적 정비와 단절 위기, 그리고 복원 노력이 교차하는 격변기를 겪었다. 대한제국은 승려의 법계에 따라 가사 색상을 규정하여 전통을 재정비하려 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 불교의 자주성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통적 승단 체계가 복원되었으며, 현대에는 승의착복규(僧衣着服規)를 통해 법계별 가사 제도가 체계화되어 고려시대 이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20세기 초 법복 착의 모습_1935년 백양사 청류암에서 금해 관영 선사(좌)와 묵담 대종사(우)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대한제국의 법복 규정과 제도적 정비
대한제국 시기 불교계는 승려의 법계에 따라 대의(大衣) 색을 제정하여 색상과 무늬의 유무로 등급을 구분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이래 약화되었던 법계별 가사 구분을 다시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 1902년(광무 6) 대한제국 정부는 원흥사를 수사찰로 세우고 사사관리서를 설치하며 사찰령 36조(일제의 ‘사찰령’과 다름)를 반포하였다. 대한제국은 이를 통해 불교계를 직접 관리하려 했으며, 승려 법복 규정의 정비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쇠퇴한 불교 제도를 국가 차원에서 재건하려는 노력이었다.
일제강점기와 사찰령 의제 규정
1911년 일제는 사찰령(寺刹令)을 제정하여 한국 불교를 조선총독부에 종속시켰다. 사찰령 제8장 승규(僧規)장 제4관 의제(衣制)에서는 법계에 따른 가사와 장삼의 착용 규범을 상세히 규정하였다. 제67조에서는 승복의 색과 재질까지도 구분하였다. 이는 표면적으로 법계별 가사 제도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일제가 한국 불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해방 이후 전통 복원과 현대적 재편
해방 직후부터 불교계는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자정 노력을 시작하고, 1962년 통합종단 출범부터는 전통적 승단 체계를 재건하는 과업에 착수하였다. 이 과정에서 ‘승의착복규(僧衣着服規)’가 제정되어 법계별 가사 착용 규범이 현대적으로 재정립되었다.
승의착복규에 따르면 입산수도 초학자가 오계와 십계를 받으면 마니가사(摩尼袈裟)를, 사미계를 받으면 5조 가사를 착용한다. 비구니가 비구니계를 받으면 하품 2장 1단 9조·7조·5조 가사를, 비구가 250계를 받으면 중품 3장 1단 15조·17조·19조 가사를 착용하며, 종정(宗正) 및 대종사(大宗師)는 상품 4장 1단 21조·23조·25조 가사를 착용한다. 이러한 규범은 율장의 전통적 규정과 고려시대 법계 체계를 현대 종단 조직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었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근현대 가사는 제도적 단절과 복원의 역사를 거쳐 현대적 체계로 자리 잡았다. 대한제국의 법복 정비 노력은 일제강점기 사찰령으로 왜곡되었으나, 해방 이후 불교계의 전통 복원 노력을 통해 법계별 가사 구분이 재확립되었다. 1960년대 제정된 승의착복규는 고려시대 이래의 ‘법계-가사 품계’ 연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종단의 조직 체계와 율법적 근거를 종합하여 체계화한 것이다. 이로써 가사는 한국 불교사를 관통하는 법복으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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