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불교를 국가 이념의 중심에 두고 승단 조직을 국가 체제 안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가사는 단순한 법복을 넘어 승려의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다. 승과제도가 마련되고 법계에 따른 승려 서열이 한층 분명해지면서, 왕실의 적극적 후원 아래 가사 문화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화려함과 정교함을 갖추게 되었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수제면 (규장각 원문서비스)
승과제도와 법계 체계의 정비
958년(광종 9) 과거제 실시와 함께 승과제도도 마련되었고, 승과 합격자에게는 대선(大選)이라는 법계를 주었다. 이후 ‘대덕-대사-중대사-삼중대사’로 이어지는 승진 체계가 마련되었고, 삼중대사 위로는 교종의 승통, 선종의 대선사가 있었으며, 최상위에는 교·선 구별 없이 왕사와 국사가 자리했다.
법계에 따른 서열화는 가사 착의 제도에 직접 반영되었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마련한 계율 전통 위에서, 고려에 이르면 법계와 지위에 따라 가사의 종류와 형태를 달리하는 관행이 제도로 정착한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가사는 승려의 위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표지가 되었다.
『고려도경』이 전하는 법계별 가사 양상
1123년(인종 1)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를 방문한 서긍이 저술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하 『고려도경』)은 당시 승려 복식과 가사 양상을 비교적 자세히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국사는 능직 비단 위에 꽃무늬를 수놓은 산수납가사(山水衲袈裟)@항목연계를 착용했고, 삼중(화상)대사는 자황색 가사를, 아사리·대덕급 승려는 5조 가사를 입었다. 반면 사미와 재가 화상은 가사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서술은 고려시대 가사가 법계와 역할에 따라 차등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려도경』이 전하는 가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제작 기법이다. 국사가 착용한 능직 비단의 꽃무늬 산수납가사는 최고위 승려 가사의 위엄과 품격을 드러내며, 직물과 자수에서 당시 최고의 공예 기술이 동원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 후반으로 가면 금사와 금직 비단을 사용한 가사가 왕실과 귀족층의 시주를 통해 조성되는데, 후기 기록과 전승에서는 이러한 유형을 통틀어 금란가사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에 대한 국가적 후원과 존숭이 가사 제작에 직접 반영된 결과다.
이 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된 유리건판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송광사 소장 보조국사가사 역시 고려시대 가사다. 일월광첩과 사천왕첩을 수(繡)를 놓아 가사에 부착한 형태로, 특이한 점은 오늘날 전하는 대부분의 가사가 주복 중심에 일월광첩이 하나 위치한 것과 달리 좌·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동사열전』보조국사전을 보면 1205년 희종 1년에 왕이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에게 만수가사(滿繡袈裟)를 하사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 가사로 추정되며, 현재는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어 사진으로만 전한다.
제도 정비와 문화적 전성
고려시대 가사는 제도적 정비와 문화적 세련화가 동시에 진행된 시기였다. 승과제도를 통한 법계 체계의 정비는 가사를 단순한 법복에서 승려의 위상과 권위를 드러내는 표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왕실과 지배층의 후원 아래 금사와 고급 비단을 사용한 가사를 제작하면서 화려한 가사 문화가 꽃피었다. 이때 형성된 가사 제작 전통과 위계 의식은 조선시대 홍가사 문화와 금란가사 전승의 토대가 되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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