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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4세기 후반부터 7세기에 걸쳐 삼국은 순차적으로 불교를 수용하였다. 고구려가 372년 전진(前秦)에서 순도(順道)를 통해 불법을 받아들인 뒤, 백제는 384년 동진(東晉)의 마라난타(摩羅難陀)로부터 불교를 전해 받았다. 신라는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승려의 법복인 가사도 중국을 경유하여 한반도에 전래했으며, 각국의 기후와 복식 전통에 맞춰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쌍영총 <공양행렬도> 가사 착의 모습_왼쪽 두 번째 인물이 스님 (Wikimedia Commons)
중국을 통한 가사 전래와 초기 형태 『삼국유사』 「원종흥법」조에는 ‘피방포(被方袍)’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가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 발원한 가사는 중국을 거치며 형태가 변화하였고, 삼국시대에는 흑장삼과 붉은 가사를 조합하여 착용하는 방식이 정착되었다. 인도의 더운 기후에서는 가사만으로 충분하였으나, 한반도에서는 바지와 저고리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장삼을 걸친 뒤 다시 가사를 두르는 중층 구조가 형성되었다. 고구려의 쌍영총 벽화 주실 동벽에는 석장을 든 승려가 홍색과 청색으로 채색된 대가사를 편단우견 방식으로 착용한 모습이 보인다. 백제의 경우 승려 복식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이 현존하지 않아 당시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금동승상에서 맨몸에 조수 없는 가사를 편단우견으로 걸친 형태가 관찰되는데, 이는 실제 백제 승려의 착용 방식보다는 인도식 원형을 재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자장율사와 계율 확립 7세기 중반 신라의 자장율사는 당에서 귀국한 후 승단 제도 정비에 착수하였다. 그는 대국통에 임명되어 승려 조직을 총괄하는 승통 체계를 정하고, 비구 250계와 비구니 348계라는 수계 체계를 신라 승가에 확립했다. 자장율사가 확립한 계율 체계는 한국 승가에서 가사 전통이 형성되는 기반을 마련했을 것으로 보인다. 율장(律藏)에는 가사의 조(條)와 품(品)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으며, 수계 단계와 가사 착용에 대한 기본 원칙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법계(法階)와 가사 품수를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구분은 고려시대 승과제도(僧科制度)가 정비되면서 본격화된다. 불교 정착과 가사 전통의 출발 삼국시대 가사는 불교가 한반도에 뿌리내리는 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 현존하는 유물이 거의 없어 구체적인 형태나 제작 기법을 온전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문헌 기록과 벽화를 통해 중국을 통해 전래된 법복 전통이 한반도에 정착하는 초기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확립된 가사 착용 규범과 계율 체계는 고려시대 화려한 가사 문화가 꽃피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통도사 자장율사 진영 *출처 국가유산포털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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