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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6세기 중엽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법륭사(法隆寺)를 비롯한 사찰에서 가사 착용이 시작되었다. 백제를 거쳐 전래된 가사 제도는 나라 시대 이후 당 문화의 직접 수용을 통해, 중국식 가사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선종의 융성과 종파별 분화 속에서 일본 가사는 실용성과 장식성이 공존하는 독자적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복사(萬福寺, 만푸쿠지) 제57대 홍유상인(弘裕上人) 진영 (Wikimedia Commons)
중국식 가사의 정착 7-8세기 나라 시대 일본은 당(唐) 문화를 적극 수용하며 중국식 가사 제도를 확립했다. 안타회(安陀會)·울다라승(鬱多羅僧)·승가리(僧伽梨)의 삼의(三衣)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율종(律宗)을 중심으로 가사 착의에 대한 엄격한 규범 준수가 강조되었다. 헤이안(平安, 794-1192)시대에는 최징(最澄)의 천태종과 공해(空海)의 진언종이 창시되며 당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었다. 이 시기에는 7조 가사가 주로 사용되었고, 특별한 의례 때 9조와 5조를 착용했다. 5조는 간략화되어 양끝단 1/3 지점에 끈을 붙여 왼쪽 어깨에서 옆면 허리까지 내리는 횡가사(橫袈裟) 방식으로도 사용되었으며, 현재 진언율종과 천태종에서 여전히 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선종의 전래와 가사의 간소화 가마쿠라(鎌倉, 1180-1333)시대에는 송(宋)과의 교류를 통해 선종(禪宗)이 전래되었다. 선종은 9조 이상의 대의(大衣)를 주로 착용했으며 가로와 세로 폭이 컸다. 이와 함께 선종 가사의 전통이 반영되며, 갈색이나 흑갈색 계통으로 색상이 단순해지고, 형태도 간소화되었다. 어깨에만 걸치는 반가사(半袈裟)가 등장했으며, 이후 앞치마 형태의 낙자(絡子)와 띠 형태의 윤가사(輪袈裟, 와게사)로 더욱 간략화되었다. 이는 수행 중심의 선풍(禪風)이 실용성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종파별 분화와 장식성의 발달 중세 이후 일본 불교는 종파별로 독자적 전통을 확립하며 가사도 분화했다. 남북조 시대(1336-1392) 법화종(法華宗)은 백색 5조를 착용했고, 정토진종(淨土眞宗)은 대처승(帶妻僧)을 허용하면서 가사 착용 규정도 완화했다. 에도(江戶, 1603-1867)시대에 이르러서는 진언종의 납의(衲衣)·청갑(靑甲), 법화종의 보라색·붉은색 무늬 가사 등 종파별 특색이 뚜렷해졌다. 에도 시대 가사의 첩(貼)은 수작업으로 정교하게 봉제 되었고, 바깥으로 바느질 흔적이 드러나지 않도록 마무리했다.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화려하고 장식적인 특성이 두드러졌으며, 가사의 형태는 에도시대에 거의 완성되었다.
실용성과 장식성의 공존 일본 가사는 실용성과 장식성이라는 상반된 방향으로 분화하며 독자적 전통을 형성했다. 선종의 영향으로 수행 중심의 간소화가 진행되어 반가사(半袈裟)·윤가사(輪袈裟) 등 실용적 형태가 발전했다. 동시에 종파별 정체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무늬와 색상을 갖춘 장식적 가사도 제작되었다. 이처럼 일본 가사는 백제와 중국에서 전래된 가사 제도를 일본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한 독자적 전통을 완성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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