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後漢) 시기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가사 역시 실크로드를 따라 중원에 전래되었다. 그러나 인도의 가사 제도는 중국의 기후적·문화적 조건 앞에서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직사각형 천 한 장을 몸에 둘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偏袒右肩) 방식은 한랭한 겨울철 기후에 부적합했을 뿐 아니라,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유교적 예법(禮法)과도 어긋났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가사는 형태와 색상 모두에서 독자적 변용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가사 체계는 한국 가사 전통의 직접적 원류가 되었다.
현대 중국 스님의 가사 (Wikimedia Commons)
가사 형태의 중국적 변화
동진(東晉) 시기 도안(道安, 312-385) 스님이 승제(僧制)를 확립하며 법의 착용 규범이 정비되기 시작했으나,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이르러 가사 착용을 둘러싼 문제들이 드러났다.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 방식은 중국 예법에 부적합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하듯, 율장에서 가사 안에 속인의 의복을 금함에도 불구하고, 포의(袍衣) 위에 가사를 덧입는 방식이 관행화되었다.
당대(唐代) 도선(道宣, 596-667) 율사는 이러한 현실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도선 스님은 제의(制衣)와 청의(聽衣)를 구분했는데, 제의는 율장에 규정된 필수 가사인 삼의(三衣)를, 청의는 기후에 따라 허용된 부가 의복을 뜻한다. 이 구분은 인도 삼의 제도를 원칙으로 존중하되 중국 환경에 맞는 복식을 수용하는 논리를 제공했다.
당나라 말기에는 상의(上衣)인 편삼(褊衫)과 치마형 하의(下衣)인 군자(裙子)가 결합하여 장삼이 형성되었다. 상의하상(上衣下裳)이 일체화된 장삼은 보온성이 뛰어났고, 이후 출가자의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일상복인 장삼과 법의인 가사―인도의 가사는 일상복의 기능도 담당―의 이원 체계가 완성되었으며, 이 구조는 한국 불교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
가사를 승복 위에 고정하기 위해 인도 가사에는 없던 영자(纓子, 가사를 묶는 끈)과 통문(通門, 중국명 명공 明孔)이 추가되었다. 통문은 일본에는 전해지지 않고 중국과 한국에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측천무후(則天武后) 시기에는 낙자(絡子, 괘자)라는 소형 가사가 등장했다.
가사 색상의 중국적 변화
중국 가사의 색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한(漢)·위(魏) 시대에는 적색(赤色)이 주였으나, 남북조 시대에는 흑색(黑色)으로 전환되었고, 당대에 이르러 회색·갈색·황갈색·홍색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관료의 복식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당시 관료의 품계는 의복의 색으로 구분되었는데, 이 등급 체계가 가사에도 적용된 것이다.
당나라 시기에는 고승(高僧)·대덕(大德)에게 자색 가사를 내리는 제도가 마련되었으며, 황실에서 금란가사(金襴袈裟)를 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계율과 현실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했다. 본래 가사는 괴색(壞色)으로 염색되어야 했다. 괴색이란 청(靑)·황(黃)·적(赤)·백(白)·흑(黑)의 정색(正色)을 피하고 여러 색을 섞어 탁하게 만든 색으로, 세속과의 구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홍색 가사나 금란가사가 오히려 우대받았다. 이는 중국 복식 문화의 상징성과 황실 제도가 계율보다 우선시되었음을 보여준다.
동아시아 가사 제도의 형성과 정착
중국에서 가사는 인도의 원형을 계승하되, 기후와 문화에 맞춰 독자적 변용을 이루었다. 특히 장삼과 가사의 이중구조는 한랭한 기후와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예법이 만들어 낸 형태적 변화로, 이후 동아시아 불교 가사 제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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