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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가사(袈裟, kāṣāya)는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자의 의복 규범을 정립하시면서 비롯되었다. 『사분율(四分律)』에는 비구들이 부처님께 “저희들은 어떤 옷을 가지리까?” 하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주인이 없는 쓰레기 옷을 갖도록 허락하셨다[1] 대정장 22, p. 849 이하 여러 페이지; 정각(2001), 『한국의 불교의례』 Ⅰ, 운주사, 64쪽에서 재인용.고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은 죽은 사람의 옷 등을 모아 기운 납의(納衣)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분소의(糞掃衣)의 시작이었다.
『사분율』 권40의 할절의(전상의) 기원 단락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할절의의 제정 『사분율』에는 부처님께서 가사의 형태를 제정하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 남쪽을 거니시다가 논밭의 구획된 모습을 보시고, 아난에게 그 밭의 형태대로 옷을 만들도록 지시하셨다. 이에 아난존자는 장조(長條)와 단조(短條), 엽(葉) 등으로 구성된 할절의(割截衣) 제작법을 비구들에게 알려주었다. 또한 비구들이 몇 조(條)로 옷을 만들어야 하는지 묻자, 부처님께서는 '5조로 하되 6조로 하지 마라'는 식으로 각 의복의 조 수를 규정하셨으며, 20조를 넘는 것은 가지지 못한다고 제한하셨다.[2]대정장 22, p. 855 중; 정각(2001), 『한국의 불교의례』 Ⅰ, 운주사, 67쪽에서 재인용. 이렇게 버려진 헝겊을 주워 모으던 분소의는 할절의로 구체화 되어, 출가자의 청빈과 수행 정신을 드러내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카티나의식과 가사 공양의 확립 가사는 단순히 개인이 착용하는 의복이 아니라, 승가 공동체의 운영과 공양 체계 속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사분율』 「카티나(Kaṭhina, 공덕의)」 조항에는 이와 관련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舍衛城)에 계실 때, 코살라국(拘薩羅國)에서 안거(安居)를 마친 여러 비구가 부처님을 뵈러 오다가 길에서 비를 만나 옷이 모두 젖으니 대의(大衣)인 승가리가 몹시 무거워졌다. 이 소식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안거를 마치고는 공덕의를 받아야 하고, 반드시 대중 앞에서 받으라”라고 하시며[3]김경숙·안명숙(2000), 「아시아 지역의 가사 착용현황에 관한 고찰」, 『복식』 50(8), 한국복식학회, 77쪽. 카티나 의식을 제정하셨다. 의식에서는 대중이 공덕의를 맡아 분배할 비구를 선출하고, “승려들이 때에 이르렀거든 들으시오. 대중은 아무 비구를 뽑아서 대중의 공덕 옷을 맡기겠다”라는 의식문을 낭독했다. 이 과정에서 신도가 보시한 가사뿐 아니라 승려가 얻은 가사도 함께 모아 균등히 분배되었으니, 신도와 승려가 함께 승려에게 보시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4]김경숙·안명숙, 위의 글, 77쪽. 카티나 의식은 가사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승가 공동체가 공유하고 관리하는 대상임을 보여주며, 이 의식은 현재까지 남방 불교 국가들에서 중요한 연중행사로 계승되고 있다.
율장, 가사 제도 수용과 변용의 준거 인도에서 형성된 가사 제도는 율장에 기록된 구체적 서사를 통해 그 제정 배경과 실천 방식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이러한 율장의 서사들은 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와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 남방으로 전파될 때 각 지역이 가사 제도를 수용하고 변용하는 준거가 되었다. 인도에서 확립된 가사의 제작법과 의식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형되었지만, 출가 수행자의 청빈과 승가 공동체의 정신을 드러낸다는 본질적 의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집필자 : 수행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대정장 22, p. 849 이하 여러 페이지; 정각(2001), 『한국의 불교의례』 Ⅰ, 운주사, 64쪽에서 재인용.
  • 주석 2 대정장 22, p. 855 중; 정각(2001), 『한국의 불교의례』 Ⅰ, 운주사, 67쪽에서 재인용.
  • 주석 3 김경숙·안명숙(2000), 「아시아 지역의 가사 착용현황에 관한 고찰」, 『복식』 50(8), 한국복식학회, 77쪽.
  • 주석 4 김경숙·안명숙, 위의 글,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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