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袈裟)는 출가 수행자가 장삼 위에 걸쳐 입는 겉옷으로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법의(法衣)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사를 장삼 위에 덧입는 형태로 착용하지만, 인도 등 남방불교권에서는 가사만 단독으로 입는다. 산스크리트어 ‘카샤야(kāṣāya)’[1]괴색(壞色)', '부정색(不正色)', '탁한 색으로 번역된다. 에서 유래한 말로서 종파에 따라 빛깔과 형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가사는 안타회(安陀會), 울다라승(鬱多羅僧), 승가리(僧伽梨)의 세 가지 옷(삼의)을 통칭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가장 겉에 입는 승가리를 가리키는 말로 삼는다.
서산대사 휴정 가사 (화엄사 성보박물관 소장, 16세기 말-17세기 초)
삼의의 차이
율장에서는 출가자가 갖추어야 할 세 벌의 법의(法衣)를 안타회(安陀會), 울다라승(鬱多羅僧), 승가리(僧伽梨)라고 하며, 이를 통틀어 삼의(三衣)라고 부른다. 이들은 착용 위치와 용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1. 안타회(安陀會, antarvāsa)
가장 안쪽에 입는 옷으로, ‘하의(下衣)’에 해당한다. 일상의 작업이나 잠자리에서 입는 평상복으로 가장 기본 복장이다.
2. 울다라승(鬱多羅僧, uttarāsanga)
안타회 위에 걸쳐 입는 ‘상의(上衣)’로, 대중과 함께 수행할 때 입는다는 뜻을 가진 입중의(入衆衣)이다. 예불이나 독경·법문을 할 때 입는 의식복이다.
3. 승가리(僧伽梨, saṃghāti)
가장 겉에 입는 ‘대의(大衣)’로, 법회나 의식 때 외부에 노출되어 출가자의 신분을 강조한다. 추운 날씨에 보온을 겸하기도 했으며,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오늘날까지 출가승의 공식 복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단순히 기능적 구분을 넘어 그 안에 수행적 의미를 담는다.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도선, 唐 1259)[2]계단(戒壇, 수계 의식을 행하는 단)의 기원, 명칭, 규범 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경전으로 통도사 계단을 비롯한 한국 불교 계단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권1에서는 하의 안타회는 탐욕스러움[貪]을 다스리기 위해, 중의 울다라승은 화가 나서 하는 말[瞋]을 조심하기 위해서, 대의 승가리는 어리석은 마음[癡]을 끊기 위해 착용한다[3]『대정장』 T45 no. 1892, 816a27-29. “三衣斷三毒也,五條下衣名安陀會,斷貪身也,七條中衣名欝多羅僧,斷瞋口也,大衣上衣名僧伽梨,斷癡心也。”고 하였다. 이는 가사가 삼독(三毒)을 벗어나기 위한 수행적 목적을 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가사의 성스러움과 법맥 전승
가사는 발우(鉢盂), 좌구(坐具), 녹수낭(漉水囊)[4]사슴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 수행자가 늘 휴대하며 물을 마시되, 벌레를 걸러 불살생계를 지키는 데 사용한다. 등 수행자가 지녀야 할 육물(比丘六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법구이다. 가사는 불법(佛法)을 계승하고 계율을 지키겠다는 서약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선종의 5조(祖) 홍인대사가 새벽녘 제자 혜능(慧能)을 불러 가사를 건네며,[5]일반적으로 법맥 전수는 가사와 함께 발우를 전함으로써 상징화된다. 이때에도 가사와 더불어 발우(鉢盂)를 함께 건네주었다. “그대가 제 육조(六祖)가 될 것”이라 말한 고사가 유명하다. 여기서 가사는 스승이 제자에게 물려주는 단순한 옷가지가 아니라 ‘법(Dharma)’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가사는 세속과 출가의 경계를 한눈에 드러내는 시각적 표지이자, 수행자의 정진을 표상하는 법의로서 부처님으로부터 이어지는 교법 전승을 드러내는 성스러운 의복이라 할 수 있다.
벽암대사 각성 가사 (화엄사 성보박물관 소장, 16세기)
· 집필자 : 수행의례팀
관련주석
- 주석 1 괴색(壞色)', '부정색(不正色)', '탁한 색으로 번역된다.
- 주석 2 계단(戒壇, 수계 의식을 행하는 단)의 기원, 명칭, 규범 등을 설명하는 중요한 경전으로 통도사 계단을 비롯한 한국 불교 계단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
- 주석 3 『대정장』 T45 no. 1892, 816a27-29. “三衣斷三毒也,五條下衣名安陀會,斷貪身也,七條中衣名欝多羅僧,斷瞋口也,大衣上衣名僧伽梨,斷癡心也。”
- 주석 4 사슴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 수행자가 늘 휴대하며 물을 마시되, 벌레를 걸러 불살생계를 지키는 데 사용한다.
- 주석 5 일반적으로 법맥 전수는 가사와 함께 발우를 전함으로써 상징화된다. 이때에도 가사와 더불어 발우(鉢盂)를 함께 건네주었다.
관련기사
-
소재 관련 명칭과 의미가사(袈裟)는 그 제작 소재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단순히 재료가 다르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불교의 수행 정신과 사상적 배경을 함께 반영한다. 소재마다 고유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이를 착용하는 스님의 수행 단계와 종교적 지향을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16~17세기 사명대사 금란가사 (표충사 소장,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분소의(糞掃衣) 분소의는 사람들이 입다 버린 헌 천을 모아 짓는 가사 초기 가사의 형태를 가리킨다. 원래 분소의는 ‘똥을 닦는 헝겊과 같다’는 뜻이며,... -
색채 관련 명칭과 의미가사(袈裟)는 그 색채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각 색은 불교의 수행 정신과 계율적 의미를 품고 있다. 실제로 '가사'의 어원인 산스크리트어 카샤야(kāṣāya)는 본래 '괴색(怪色)'을 뜻하며, 화려함을 거부한 청정한 마음을 상징한다. 경전에서는 가사의 색채 규정을 통해 출가자가 갖추어야 할 내적 덕성을 제시한다. 화려함을 거부한 가사의 빛깔_2022년 송광사 동안거 해제법회 (승보종찰 조계총림송광사) 괴색의(怪色衣) 괴색의는 원색을 피하여 의도적으로 색상을 누그러뜨리고 퇴색시킨 법의를 말한다. '괴색(壞色)'이란 색... -
형태 관련 명칭과 의미가사(袈裟)는 그 형상의 어떤 요소를 부각하느냐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이러한 명칭에는 수행자의 생활 방식과 불교 교학이 직관적으로 담겨 있다. 한 땀 한 땀 이어 붙인 천 조각들은 욕심을 걷어 내고 중생의 복전을 이루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논밭의 형상을 닮은 가사, 전상의(田相衣)_심향사 성오 스님 가사 부분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할절의(割截衣) '할절'은 ‘천을 잘라 잇는다’는 뜻으로,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분소의(糞掃衣)에서 자연스럽게 ... -
공덕 관련 명칭과 의미가사(袈裟)는 그 착용의 공덕을 드러내는 여러 이름이 있다. 이것은 가사를 단순한 의복이 아닌 '법(法)의 실천 도구'이자 '복덕을 짓는 매개'로 이해하는 승가의 전통을 반영한다. 수행자의 법복, 해탈의(解脫衣)·여법의(如法衣) (pixabay) 여법의(如法衣) '여법(如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땅하다’는 뜻으로, 부처님이 정한 법도대로 만든 올바른 의복임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따라서 여법의는 가사의 형식·색·착용법이 불법에 합당하다는 보증이자, 가사를 착용한 스님의 정법 수호 의지를 보여주는 명칭이다. 해탈복(解脫服) ... -
가사를 착용하는 공덕가사를 착용하는 일은 단순한 복식 행위가 아니라 다양한 공덕과 영험을 불러오는 종교적 실천으로 여겨진다. 경전에서는 가사 착용이 가져다주는 이익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데, 가사를 복덕을 얻는 매개체이자 영험의 근원으로 이해했다. 화엄사 도천 스님(1910~2011)의 가사와 장삼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 가사 착용의 열 가지 이익 『십주비바사론』은 보살의 계율행과 마음가짐을 설명하고 있는 논서로, 권16에서 '법의를 입어 얻는 이익'을 설명한다. 여기서 가사 착용자가 얻는 이익을 열 가지로 제시하는데, 가사 착용이 수행... -
가사를 공경하는 공덕경전에는 가사를 입는 행위뿐 아니라, 가사를 공경하거나 그 조각 하나를 몸에 지니는 일까지도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낳는다고 설한다. 이는 가사가 단순한 출가자의 의복을 넘어, 불법(佛法) 자체를 담은 성물임을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불(佛)·법(法)·승(僧) 삼보를 향한 공경심_대각국사 삼보명 자수가사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비화경(悲華經)』 ― 가사의 5성(聖) 공덕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에서는 비화경을 인용하여 가사를 공경하거나 작은 조각이라도 소지할 때 얻을 수 있는 다... -
가사를 보시하는 공덕 (1) 경전가사 한 벌에 발원을 얹어 시주하는 공덕에 대한 부처님 말씀은 의외로 구체적이다. 아름다운 얼굴과 포근한 침구에서부터 천상생, 나아가 열반의 지름길까지 모든 복덕이 한 땀 보시 속에 들어 있다고 설한다. 가사 보시는 단순한 의복 공양을 넘어 현세적 안락과 궁극적 해탈을 동시에 약속하는 최고의 공덕 행위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가사공덕경(袈裟功德經) 권수제면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불위수가장자설업보차별경(佛爲首迦長者說業報差別經)』 ― 가사 보시의 열 가지 공덕 『불위수가장자설업보차별경』은 선행이 가져오는 업보를 항목별로 ... -
가사를 보시하는 공덕 (2) 설화가사 보시의 공덕은 경전에 근거하지만, 특히 민간 설화를 통해 구체적인 체험담으로 생생하게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설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가사 시주와 가사불사 참여가 실제로 어떤 영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특히 생사의 기로에서 가사 불사로 목숨을 구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신심을 더욱 깊게 했다. 큰스님께 가사를 공양하는 모습_2018년 수덕사 가사불사 청평사 '세 땀 바느질' 설화 당태종의 딸 평양공주에게 연심을 고백한 한 청년이 황제의 노여움을 사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청년은 처형된 뒤... -
인도가사(袈裟, kāṣāya)는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자의 의복 규범을 정립하시면서 비롯되었다. 『사분율(四分律)』에는 비구들이 부처님께 “저희들은 어떤 옷을 가지리까?” 하고 여쭈니, 부처님께서 주인이 없는 쓰레기 옷을 갖도록 허락하셨다 대정장 22, p. 849 이하 여러 페이지; 정각(2001), 『한국의 불교의례』 Ⅰ, 운주사, 64쪽에서 재인용.고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은 죽은 사람의 옷 등을 모아 기운 납의(納衣)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분소의(糞掃衣)의 시작이었다. 『사분율』 권40의 할절의(전상의) 기원 단락 (불교기록... -
남방불교권남방 불교 국가들은 인도에서 확립된 가사 제도를 팔리율(Pali Vinaya)을 통해 계승하여 독자적인 전통을 형성했다. 이들 지역은 인도의 삼의(三衣) 체계와 괴색법(壞色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열대 기후와 지역 문화에 맞게 가사의 색깔과 착용 방식을 변형했다. 남방불교 스님의 편단우견 착의법 삼의 체계의 계승과 지역색 반영 남방 불교 국가들은 삼의 체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안타회는 내의로 일상에서 착용하고, 울다라승은 상의로 활동 시 걸치며, 승가리는 대의로 탁발이나 법회 등 공식 의식에서 사용하는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 -
중국후한(後漢) 시기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가사 역시 실크로드를 따라 중원에 전래되었다. 그러나 인도의 가사 제도는 중국의 기후적·문화적 조건 앞에서 그대로 유지될 수 없었다. 직사각형 천 한 장을 몸에 둘러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편단우견(偏袒右肩) 방식은 한랭한 겨울철 기후에 부적합했을 뿐 아니라, 신체 노출을 금기시하는 유교적 예법(禮法)과도 어긋났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가사는 형태와 색상 모두에서 독자적 변용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가사 체계는 한국 가사 전통의 직접적 원류가 되었다. 현대 중국 스... -
일본6세기 중엽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법륭사(法隆寺)를 비롯한 사찰에서 가사 착용이 시작되었다. 백제를 거쳐 전래된 가사 제도는 나라 시대 이후 당 문화의 직접 수용을 통해, 중국식 가사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선종의 융성과 종파별 분화 속에서 일본 가사는 실용성과 장식성이 공존하는 독자적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만복사(萬福寺, 만푸쿠지) 제57대 홍유상인(弘裕上人) 진영 (Wikimedia Commons) 중국식 가사의 정착 7-8세기 나라 시대 일본은 당(唐) 문화를 적극 수용하며 중국식 가사 제도를 확립했다. 안타회(... -
삼국시대4세기 후반부터 7세기에 걸쳐 삼국은 순차적으로 불교를 수용하였다. 고구려가 372년 전진(前秦)에서 순도(順道)를 통해 불법을 받아들인 뒤, 백제는 384년 동진(東晉)의 마라난타(摩羅難陀)로부터 불교를 전해 받았다. 신라는 527년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승려의 법복인 가사도 중국을 경유하여 한반도에 전래했으며, 각국의 기후와 복식 전통에 맞춰 변형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쌍영총 가사 착의 모습_왼쪽 두 번째 인물이 스님 (Wikimedia Commons) 중국을 통한 가사 전래와... -
고려시대고려는 불교를 국가 이념의 중심에 두고 승단 조직을 국가 체제 안에 편입시켰다. 이 과정에서 가사는 단순한 법복을 넘어 승려의 사회적 지위와 종교적 권위를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다. 승과제도가 마련되고 법계에 따른 승려 서열이 한층 분명해지면서, 왕실의 적극적 후원 아래 가사 문화는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화려함과 정교함을 갖추게 되었다.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권수제면 (규장각 원문서비스) 승과제도와 법계 체계의 정비 958년(광종 9) 과거제 실시와 함께 승과제도도 마련되었고, 승과 합격자에게는 대선(大選)이라는... -
조선시대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표방하며 불교에 대한 제도적 제약을 가했으나, 전기 왕실의 후원과 후기 민중 신앙으로의 확산 속에서 불교 전통은 지속되었다. 가사(袈裟) 역시 이러한 환경에서 그 맥을 이어갔으며, 조선 중·후기에는 구조·색채·상징 체계에서 뚜렷한 변천을 거치며 한국 가사만의 독자적 특징을 완성해 갔다. 삼보명 자수가사의 일월광첩 중심 부분_18세기 추정 선암사 대각국사 가사 (2025년 서울공예박물관 가사 특별전 직접 촬영) 조선 전기 ― 가사 전통의 지속 조선 건국 초기 불교는 국가 차원의 제약을 받았으나 가사 ... -
근현대개항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근현대 시기 가사는 제도적 정비와 단절 위기, 그리고 복원 노력이 교차하는 격변기를 겪었다. 대한제국은 승려의 법계에 따라 가사 색상을 규정하여 전통을 재정비하려 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 불교의 자주성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통적 승단 체계가 복원되었으며, 현대에는 승의착복규(僧衣着服規)를 통해 법계별 가사 제도가 체계화되어 고려시대 이래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20세기 초 법복 착의 모습_1935년 백양사 청류암에서 금해 관영 선사(좌)와 묵담 대종사(우) (불교기록문화...
더보기 +
불교용어
관련자료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