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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 은해사사적 목판인출본은해사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 가운데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사적기는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 스님이 편찬한 『영천군 은해사 사적(永川郡銀海寺事蹟)』(1798)이다. 영파 스님은 화엄, 선, 염불에 해박하였고, 은해사에 주석하면서 경상도 지역에 화엄학 종지를 펼친 학승이었다. 사적기 본문에 의하면 스님은 61세인 1788년 무렵부터 은해사 운부암에 머물렀으며, 1789년 겨울 사적기 말미에 직접 게송을 붙여 절을 세운 인연과 대대로 불사를 계승해온 스님들의 업적을 찬탄하였다. 또한 은해사의 시작을 신라 헌덕왕대... -
팔공산은해사사적비은해사의 연혁을 기록한 자료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늦은 것이 1943년에 건립된 〈팔공산 은해사 사적비(八公山銀海寺事蹟碑)〉이다. 비의 전체 크기는 315cm, 비신 높이 168cm, 너비 77.5cm, 두께 30.5cm이며, 현재 은해사 승탑원에 위치한다. 우당거사 김정래(金正來)가 비문을 지었고, 총독부 중추원 참의 최윤(崔潤)이 비문의 글씨를 썼다. 제액은 위창거사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이 썼다. 비신 앞면 상부에는 ‘팔공산은해사적비’라는 전액이 새겨져 있고, ‘조선불교조계종경상북도영천군대본산은해사사적비명병... -
백흥암 영산전 중수기 현판1858년(철종 9) 혼허 지조(混虛智照, 생몰년 미상) 스님이 작성한 〈백흥암 영산전 중수기 현판문〉이다. 백흥암의 원래 이름은 백지사(栢旨寺)였다. 1546년(명종 1) 천교(天敎) 대사가 중창한 이후 백흥암으로 바꿨다. 중수기의 제목을 ‘백흥암’이라 쓰면서 내용에는 ‘백지사의 영산전[栢旨之靈山殿]’이라고 썼다. 개명 이후 3백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백지사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중수 과정에서 들보 사이에 있었던 중수 기록을 발견하였다. 여기에는 1767(영조 43)에 중수한 내용이 있었다. 중수... -
백흥암 보존공덕기 현판1798년(정조 22) 2월에 백흥암이 각종 부역을 면제받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백흥암 보존공덕기 현판문〉이다. 공덕기는 홍애(洪厓) 이기원(李箕元. 1745~1807경)이 썼는데 그의 문집 『홍애집(洪厓集)』에도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기원은 서자(庶子) 출신으로 높은 관직에는 오르지 못하였고, 50세가 넘어 종6품 관직을 지냈다. 말년에는 절에서 가까운 신녕현(新寧縣)에 매음전사(梅陰田舍)라는 집을 마련하여 머물렀다. 이 무렵 인연을 맺은 백흥암의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이 이기원에게 기문(記文)을... -
백흥암 중흥유공기 현판1810년(순조 10) 3월에 제월 성안(濟月聖岸) 스님이 쓴 〈백흥암 중흥유공기 현판문〉이다. 당시 주지인 해암 선사(海巖禪師)가 절의 중건에 큰 공을 세운 설화(雪華), 자암(紫巖), 도봉(道峰) 등 대선사(大禪師)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안에게 글을 청하여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두 시대의 이름난 강사[名講]로서 잇달아 절에 머물며 강학(講學)에 힘쓰며 각종 불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설화 종백(雪華宗伯) 스님은 1772(영조 48)년에 이 절에 왔는데, 당시 10여 명의 승도는 하루의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이었다... -
백흥암 극락전 단확공덕기 현판1818년(순조 18) 5월에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이 쓴 극락전의 단청 불사 공덕기가 기록된 현판문이다. 백흥암에는 극락전과 영산전, 명부전의 세 전각이 있는데, 극락전은 서까래와 받침목이 썩고 단청이 퇴색할 지경이었다. 1817년 봄부터 암주(庵主)인 전암 순홍(轉庵 順洪) 스님이 단청 불사를 발원하고 시주를 모았다. 승도들이 힘을 모아 500냥을 모집하고, 별실(別室)의 운악 성의(雲岳性義) 스님이 100여 냥을 모았다. 여기에 전(前) 총섭 두안(斗安)·성신(性信)·후략(厚畧)·유소(有素)·봉명(... -
영천 팔공산 백흥암 설선당 중건기 현판1860년(철종 11년) 8월 진해 기수(進海棋守) 스님이 쓴 설선당(說禪堂)의 중건기를 기록한 현판문이다. 백흥암은 본래 신라의 거찰이었는데 중간에 강당으로 바꾸고 1849년(헌종 15)에 여러 요사를 중건하였다. 1860년에 설선당을 5칸으로 중건하였다. 뒷마루가 5개이며 남북 2칸은 원래대로 하고 중앙 2칸은 조실(祖室), 남쪽 칸은 별업실(別業室)로 만들었다. 총공사비는 1,000여 냥과 쌀 100여 말이 소요되었다. 260냥은 무자생(戊子生) 동갑계원(同甲稧員)들이 내고, 나머지는 모두 승방(僧房)에서 준비하였다. 갑... -
백흥암 보화루 중건기 현판1878년(고종 15), 5월에 환명사문(喚明沙門) 일진(日眞) 스님이 쓴 〈(백흥암) 보화루 중건기 현판문〉이다. 암자의 전각과 요사는 중건하였으나 누각은 재목이 썩고 기와가 허물어져 있었다. 이에 암자의 경오갑계에서 논 10마지기와 돈 460량을 시주하여 논은 공용으로 쓰고, 돈은 누각 중수에 쓰도록 하였다. 현판문의 시주질 첫머리에 경오갑계의 계원 명단을 모두 기록하였다. 혼허 지조(混虛智照, ?~1828-1878~?) 스님을 시작으로 모두 39인이다. 혼허 지조 스님은 1858년(철종 9)에 「백흥암 영산전 중수기(百興... -
백흥암 중선불사기 현판1897년(고종 34)에 삼괴산인(三桃山人) 이존후(李存垕)가 쓴 영산전 3존상과 여러 탱화의 조성을 기록한 현판문이다. 이존후의 증조부는 일찍이 「명부전중수기(冥府殿重修記)」를 짓는 등 그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백흥암과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었다. 백흥암은 창건이 오래되어 여러 불상이 훼손되었다. 이를 개신(改新)하기 위해 연화승(緣化僧)이 여러 시주로부터 1,677량의 돈과 199말의 쌀을 모았다. 영산전의 3존불을 개금하고 16나한상을 개칠하였다. 또한 후불탱화 1점과 각부의 그림 4점, 법당 위쪽의 후불과 신장(神將) 및... -
백흥암 명부전 중창기 현판1759년(영조 35) 6월에 목암당(牧菴堂) 선정(宣定) 스님이 쓴 〈백흥암 명부전 중창기 현판문〉이다. 정확한 이름은 「건륭이십사년 기묘 육월일 백흥암 명부전 중창기(乾隆二十四年己卯六月日栢興菴冥府殿重刱記)」이다. 백흥암 명부전은 1651년(효종 2) 5월에 창건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존상(尊像)이 퇴락하자 1667년(현종 8) 송계문인(松溪門人) 신문(信文) 등이 보수하였다. 다시 세월이 흐르면서 승도는 몰락하고 절은 쇠락할 지경이었다. 이에 1759년 본사 은해사의 모든 승도들이 발원하여 재물을 모으고, 힘을 합쳐 불과... -
영천 은해사 백흥암 명부전 중수기 현판1869년(고종 6) 5월에 완산(完山) 이연보(李延輔)가 쓴 〈백흥암 명부전 중수기 현판문〉이다. 백흥암의 장로 청봉(靑峯) 윤화(潤和) 스님이 중수기를 부탁하였다. 경자갑계에서 돈 3백민(緡)과 답 19두락(斗落), 쌀 25미두(米斗)를 시주하였고, 읍내의 김봉천(金奉天) 등 많은 승속이 재물을 희사하였다. 조선 후기 백흥암에는 여러 갑계가 활동하며 가람을 중수하고 절을 지켜나갔다. 무자갑계, 갑오갑계, 경오갑계, 병자갑계 그리고 이 경자갑계 등이다. 억불의 시대에서 갑계는 백흥암을 지켜낸 원동력이었다. 말미의 시주질에는 ... -
백흥암 명부전 중건기 현판1933년에 박회응(朴晦應) 석주(錫柱) 스님이 쓰고, 1934년에 이퇴암(李退庵) 스님이 부기(付記)한 〈백흥암 명부전 중건기 현판문〉이다. 명부전이 퇴락하자 1931년에 주지로 부임한 김보광(金普光) 도현(道玄) 스님이 발원하여 1932년 봄에 중수를 발원하였다. 낡은 기와를 교체하고, 시왕상을 고쳐 봉안하였으며, 여러 칸을 덧달았다. 불사에 든 비용은 모두 1천 8백여 원이며 여러 신도들이 시주하였고, 부족한 재원은 절의 경비에서 충당하였다. 말미의 시주질에는 불사에 동참한 명단과 시주 금액을 기록하였다. 시주질의 맨 앞... -
인악집-백흥암영산전소성불보살급나한제성상기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의 문집 『인악집(仁嶽集)』 권2에 「백흥암 영산전의 부처님과 보살과 나한 여러 성인의 상을 조성한 기문[百興菴靈山殿塑成佛菩薩及羅漢諸聖像記]」이 실려 있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암자로 팔공산 태실봉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영산전의 ‘영산’은 영축산(靈鷲山)의 준말로 석가모니께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강설하셨던 곳이니, 이러한 상황을 형상화한 것이 영산전이다. 위 기문은 이 전각에 불보살과 나한상들을 조성하여 봉안한 일을 기록한 글이다. 기문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 -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상량문백흥암의 중심 전각인 극락전은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1985년에 해체 수리하였다. 이때 어간 종도리 배바닥에서 ‘숭정십육년세차계미원월일시발어유월일상량(崇禎十六年歲次癸末元月日始發於六月日上樑)’이라는 묵서가 발견되어 이 건물의 중건 연도를 살필 수 있었다. 1985년 극락전에서 발견된 이 상량문에 의하면, 극락전은 1592년에서 1593년 무렵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완전히 소실되었다. 전쟁의 참화를 겪고 난 후 1643년(인조 21) 1월에 중건을 시작하여 6월에 상량하면서 이 기록을 남겼다. 짧은 내용이지만 극락전의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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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찰사료-백흥암 서적 간판『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1911)에는 「백흥암서적간판(百興庵書蹟刊板)」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작성자와 작성 연대를 알 수 없으며, 백흥암의 편액 내역을 기록한 자료이다. 「백흥암서적간판」에는 백흥암의 법당인 극락전에 1745년에 작성된 〈극락전〉의 편액이 걸렸음과 〈명부전〉·〈영산전〉·〈산령각〉·〈보화루〉·〈백흥대난야〉 등 모두 6개 편액과 편액이 걸린 전각을 기록하였다. 『조선사찰사료』에서 은해사 관련 자료는 9건, 기기암·묘봉암·운부암·백흥암 등 소속 암자에 관한 자료는 8건, 모두 17건이 확인되며, 그 원문... -
조선사찰사료-은해사 백흥암 중창기『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1911)에는 1850년 운부암의 종하(宗夏) 스님이 작성한 「은해사 백흥암 중창기(銀海寺百興庵重剏記)」가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1847년 은해사에 있었던 큰 화재 이후 백흥암의 중창 불사의 내용을 기록한 자료이다. 「은해사 백흥암 중창기」는 1850년(철종 원년) 3월에 운부암(雲浮庵)의 고산사문(高山 沙門) 종하 스님이 쓴 〈백흥암 중창기 현판문〉이다. 정월 2일에 계우(桂宇) 스님이 가람 중건에 관한 문서들을 가지고 와서 종하 스님에게 중창기를 부탁하였다. 암자의 중건을 시작한 지 오래되... -
묘법연화경요해 목판『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과 더불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흔히 『법화경』이라 불린다. 인도에서 찬술된 이후 중국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한역(漢譯)되었다. 3종의 한역본 가운데 후진(後秦) 시기 406년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혹은 350~409)이 번역한 『묘법연화경』(7권)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찍이 고구려·백제·신라에서 『법화경』의 경전과 법화 신앙이 수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전이 한역... -
백흥암 순영제음과 완문은해사와 백흥암이 인종대왕의 태실 수호 사찰로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받았던 사실은 백흥암에 전해지는 「순영제음(巡營題音)」과 「완문(完文)」을 통해 알 수 있다. 순영제음은 백성들이 감영(監營)에 민원을 올리면 이에 대해 감영에서 처분한 내용을 말하고, 완문은 조선 왕실에서 향교·서원·결사·개인 등에게 어떠한 권리나 특권을 인정하는 공식적인 문서이다. 원래 낱장의 종이에 기록된 것이나, 당시 백흥암의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이 「순영제음」과 「완문」을 한 장의 나무판에 새겨 현판으로 전해진다. 「순영제음... -
유정일집-임진 춘『유정일집(柳亭逸集)』은 임진왜란에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최응사(崔應泗, 1520∼1612)의 문집이다. 최응사의 자는 효원(孝源)이고 호는 유정일(柳亭逸)이다. 저자가 모임을 자주 가졌던 정자 이름이 유정(柳亭)이다. 문집에 「일록(日錄)」이 있어서 저자가 태어난 때부터 1594년 기근이 심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였다. 은해사 관련한 기록은 임진년(壬辰年) 봄에 나오는데, 중요 사건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종 15년(1520) 5월에 영천군에서 출생했고, 영천시 대전동에 부친이 집을 지어... -
범해선사시집-은해사 백흥암 무흡 상인을 생각하며『범해선사시집(梵海禪師詩集)』은 범해 각안(梵海覺岸, 1820~1896) 스님의 문집이다. 범해 선사의 자는 환여(幻如)로, 해남 대둔사(大芚寺)의 호의 시오(縞衣始悟) 스님에게 편양파(鞭羊派)의 법맥을 이어받았고, 초의 의순(草衣意恂) 스님에게도 수학하였다. 교학과 불교사에 정통하여 『유교경기(遺敎經記)』와 『명수집(名數集)』, 『은적사사적(隱跡寺事蹟)』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은해사 백흥암 무흡 상인을 생각하며 [憶銀海寺白興庵武洽上人]」는 『범해선사시집』 권2에 수록된 5언절구이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딸린 암자로서, 8... -
징월대사시집-백흥사에 쓰다「백흥사에 쓰다 (題百興社)」는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문집 『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詩集)』 권1에 수록되어 있는 7언절구이다. 백흥사는 은해사의 말사 백흥암을 가리킨다. 시의 내용을 기(起)·승(承)·전(轉)·결(結) 구(句)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구에서는 백흥암이 높은 곳에 있음을 묘사하기를 푸르스름한 벼랑에 올라 보니 잣나무가 무성하다고 했다. 백흥암은 팔공산 깊숙이 태실봉(462m)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승구에서는 석장을 짚고 가까스로 암자에 도착했다고 하여, 그곳까지 가는 경로가 ... -
함홍당집-삼가 백흥암 현판의 운에 따라「삼가 백흥암 현판의 운에 따라 [謹次百興庵板上韻]」는 함홍 치능(涵弘致能, 1805~1878) 스님의 문집 『함홍당집(涵弘堂集)』 권1에 실려 있는 7언율시이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딸린 암자로서, 873년(신라 경문왕 13)에 창건하여 ‘백지사(柏旨寺)’라 하였고, 1546년에 백흥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시의 내용을 수(首)·함(頷)·경(頸)·미(尾) 연(聯)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련에서는 이루지 못한 세상일을 도모하지 않고 숲 속에서 오직 사슴·멧돼지와 어울려 산다고 했다. 인간세상과 절연하여 자연 속에 사는 ... -
구애집-은해사에 도착하여 비 때문에 체류하면서 함께 짓다『구애집(龜厓集)』은 조극승(曺克承, 1803~1877)의 문집이다. 조극승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휴(景休), 호는 구애(龜厓)이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고, 1831년(순종 3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언관으로 신임을 받았으나 고향에 은거하였다. 「은해사에 도착하여 비 때문에 체류하면서 함께 짓다[到銀海滯雨共賦]」는 『구애집』 권1에 수록되어 있는 5언율시다. 이 시의 앞쪽에는 7언율시 「동화사에 들어가[入桐華]」와 5언절구 「수령을 넘어 운부암에 들어가[踰藪嶺入雲浮]」 그리고 6언시와 5언절구 두 편의 「백흥암(百興... -
후담문집-백흥암「백흥암(百興庵)」은 대구에서 활동한 채헌식(蔡憲植, 1855~1933)의 문집 『후담문집(後潭文集)』 권2에 수록된 7언율시이다. 백흥암은 은해사에 속한 암자이다. 시의 내용을 수(首)·함(頷)·경(頸)·미(尾) 연(聯)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수련에서는 백흥암 산방에 잠시 기거하며 편히 지내고자 하니, 스님이 친절하게 대함에 옛정이 여전하다고 했다. 저자가 사찰에 자주 왕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함련에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니 지팡이에 더욱 힘을 주게 되고, 올라갈수록 절경이 펼쳐지니 그 광경을 보느라고 걸음이 느려진... -
은해사 중창주 홍진국사고려 후기의 법상종 고승인 홍진국사 혜영(弘眞國師 惠永, 1228~1294) 스님은 1228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났다. 스님의 일생은 1298년 동화사(桐華寺)에 건립된 〈홍진국존비(弘眞國尊碑)〉의 내용을 통해 확인된다. 홍진국사 혜영 스님의 속성은 강씨(康氏)로, 11세에 충연(沖淵, 생몰년 미상) 스님의 문하에 있다가 남백월사(南白月寺)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스님은 17세에 승과에 합격한 뒤 1269년까지 삼중대사(三重大師), 수좌(首座)를 거쳐 승통(僧統)이 되어 교종(敎宗) 최고의 승직에 올랐다. 1267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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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 지연과 은해사자운 지연(慈雲志演, 생몰년 미상) 스님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한 화승(畵僧)이다. 스님의 법명은 각종 문헌 기록이나 화기(畫記)에서 ‘持演’, ‘持涓’, ‘智涓’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스님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님은 1778년 은해사 백련암의 〈지장시왕도〉 제작에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822년 수도사 〈괘불화〉 제작에 화사(畵師)로 참여하기까지 약 40여년 간 은해사를 비롯하여 통도사, 기림사, 석남사 등 경상도 지역의 사찰을 중심으로... -
해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해암 홍린(海庵洪璘) 스님의 진영이다. 해암 홍린 스님은 부휴문중의 일원으로 서악 도태(西岳道泰)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명강사였던 자암 봉초(紫岩奉璴)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에 대한 기록은 1810년 「백흥암 중흥유공기(百興菴重興有功記)」, 1829년 「은해사 거조암 대법당중수기(銀海寺居祖庵大法堂重修記)」 등 은해사와 백흥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흥암의 주지 인악 의첨(仁岳義沾, 1746~1796) 스님의 제자인 제월 성안(霽月聖崖) 스님에게 「백흥암 중흥유공기」의 글을 부탁했으며 은해사 종... -
징월화상 행장-징월대사시집『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詩集)』은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제자들이 스님의 시와 기문을 모아 편찬한 문집이다. 이 문집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75편의 시와 3편의 기문이 수록되어 있다. 문집의 말미에는 징월 정훈 스님의 제자인 유혜(有惠, 생몰년 미상) 스님이 1832년 지은 「징월화상행장(澄月和上行狀)」이 수록되어 있어 스님의 행적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징월화상행장」에 따르면, 스님의 휘는 정훈, 자는 경호, 호는 징월 속성은 김씨이며, 법계는 서산 휴정(西山休靜, 1520~160... -
전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전암 승홍(轉菴勝洪, 1785~1829 활동)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정확한 행장은 알 수 없으나 1785년부터 1829년까지 약 40여년 간 15건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전암 승홍 스님은 편양 문중의 일원으로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6~1729)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제자이다. 갑자갑계의 일원이며, 백흥암의 주지로서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에게 「백흥암 극락전 단확공덕기(百興庵極樂殿丹臒功德記)」(1818)의 글을 부탁하였... -
운악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과 기기암에 주석했던 운악 성의(雲岳性義)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이력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816년부터 1831년까지 활동이 확인된다. 1978년 형준(炯埈) 스님이 편찬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 따르면 스님은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스님의 6세손이며 백흥암에 진영이 남아있는 월파 달희(月坡達熙) 스님의 법을 받았다고 한다. 운악 스님은 1816년에 건립된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 스님의 비에 은해사 종사(宗師)로 기록되어 있으며 1818년 은해사 백흥암 단청, 1... -
도봉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 스님의 3세손이자 태허 남붕(太虛南鵬, ?~1777) 스님의 제자로 고운사의 함홍 치능(涵弘致能, 1805~1878) 스님을 가르쳤다고 한다. 스님은 1780년경 주석처를 은해사 백흥암으로 옮겨 시주(施主)를 모집하고 영산전 중창과 명부전 존상 개채, 공양소와 조사각 설치, 불화를 제작하는 등 각종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는 「백흥암 영산전 소성불보살급나한제성상기(百興菴靈山殿塑成佛菩薩及羅漢諸聖... -
운허대화상문오만일회신창송공비〈운허대화상문오 만일회 신창송공비〉는 운허 문오(運虛文午)가 개설한 만일회(萬日會)와 운허 스님의 공덕을 기리고자 1891년에 건립한 비석이다. 이 비석은 은해사 승탑원의 2열 비석군(碑石群) 중 오른쪽에서 열여섯 번째에 건립되어 있으며, 개석방부(蓋石方趺) 형태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운허대화상문오만일회신창송공비(運虛大和尙文午萬日會新剏誦功碑)’라는 제목의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운허 문오(運虛文午)는 속성이 김씨, 본관은 경주(慶州)로 아버지는 김종대(金宗岱),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이다. 운허 스님은 ... -
백흥암 극락전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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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아미타삼존불좌상백흥암 극락전에는 〈아미타삼존불좌상〉이 주존으로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화로는 〈아미타삼존불도〉가 걸려 있다. 또한 극락전 좌측 벽면에는 〈감로왕도〉, 우측 벽면에는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는 〈수미단〉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극락전 삼존불을 봉안한 조선시대의 장방형 불단이다.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132×396×153.5㎝이다. 수미단은 부처님이 사부대중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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