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암은 은해사 남서쪽 계곡인 안흥골 입구에 있다. 서운암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천교화상이 본사를 이건할 때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찰은 폐사로 남아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중건하였다. 경내에는 1980년대 이후 신축한 전각 1동과 산령각이 있다. 산령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작은 건물이며,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령각 내에는 현재 나무로 만든 〈산신상〉과 〈산신도〉가 봉안되어 있다.
산령각에는 원래 1817년에 제작된 〈독성도〉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는 95×85.5㎝이며, 비단에 채색한 것이다. 기암괴석과 나무로 둘러싸인 화면 중앙에 머리에 관을 쓰고 부채를 든 긴 수염의 독성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고, 그 오른쪽에는 복숭아를 든 동자가 그려져 있다. 화면 좌측 하단에 적힌 화기에 ‘가경22년 정축11년일(嘉慶二十二年丁丑十一年日)’이라 기록되어 있어, 1817년(순조 17)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화기에는 서운암을 창건하면서 이 그림을 함께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산령각의 건립 역시 이 무렵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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