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
징월대사시집-미타암 중수기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詩集)』은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문집이다. 징월 대사의 자는 경호(敬昊), 속성은 김(金)으로, 관월(冠月) 화상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시에 뛰어나 당시 사대부들이 영남의 명승으로 높이 칭찬하였다. 은해사 운부사(雲浮社, 운부암)에서 세수 73세로 입적하였다. 「미타암 중수기(彌陀菴重修記)」는 『징월대사시집』 권3에 수록되어 있다. 처음에 “팔공산은 영남의 명승지요, 은해사는 영천군의 명찰이다. 팔공산 한 지맥이 멀리서 뻗어 와 그윽한 곳에서 열리니 미타암이 있는 곳이다.”라는 문... -
묘법연화경요해 목판『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과 더불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대표적인 경전이다.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으로 흔히 『법화경』이라 불린다. 인도에서 찬술된 이후 중국에서 세 차례에 걸쳐 한역(漢譯)되었다. 3종의 한역본 가운데 후진(後秦) 시기 406년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혹은 350~409)이 번역한 『묘법연화경』(7권)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찍이 고구려·백제·신라에서 『법화경』의 경전과 법화 신앙이 수용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전이 한역... -
묘법연화경요해 목판 인출본후진(後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혹은 350~409)이 406년에 한역(漢譯)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7권)에 송나라 승려 계환(戒環)의 해(解)를 붙여 간행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華經要解)』이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소장본(은해사 성보박물관 소장 157-1)은 1455년(세조 1)에 제작된 금속활자 을해자(乙亥字) 계열의 법화경을 토대로 하여 1531년(가정 10) 영천군 공산본사(지금의 은해사)에서 다시 목판으로 판각되어 간행되었으며, 1625년(천계 5) 묵서기를 가진 후쇄(後刷) 인출본 전적이다. 이... -
오백성중청문 필사본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오백성중청문(五百聖衆請文)』은 지금의 거조사(과거 은해사 산내 암자 소속 당시 거조암)에 전해 내려오던 필사본 책 1권이다. 2003년 국립춘천박물관의 특별전 도록 『구도와 깨달음의 성자, 나한』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현재 거조사의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인 1375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내부에는 526구의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책의 서문 「청성의문서(請聖儀文序)」는 당시 은해사에서 활동하던 승려 영파 성규(影波聖奎, 1728~1812)가 나이 78세, 즉 1805년(순조 5, 을축)에 작성한 ... -
은해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유물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중수기〉 1점과 『묘법연화경요해』(권1) 1책, 〈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사도합륜다라니〉 1점 등은 은해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이다. ‘옹정칠년기유윤칠월일중수도금필공봉안(雍正七年己酉七月日重修塗金畢功奉安)’으로 시작하는 〈중수기〉는 1729년(영조 5) 불상을 중수·개금하고, 당시 불사의 참여자와 암자의 대중들을 기록한 일종의 발원문이다. 내용에 따르면, 당시 주지[時和尙] 가찬(佳贊) 스님이 불사를 주도하였고, 〈염불환향곡(念佛還鄕曲)〉을 지은 기성 쾌선(箕城快善, 16... -
함풍칠년을묘십이월일 원문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복장유물 가운데 발원문(發願文)에 해당하는 〈함풍칠년을묘십이월일원문(咸豊七年乙卯十二月日願文)〉 1점이다. 이 문서를 봉안한 전각 및 불상은 알 수 없다. 문서의 서두에 보이는 함풍 7년은 1857년이며, 을묘년은 1855년으로 제목에서 작성 연대가 서로 다른데, 이는 은해사 〈신중도〉(1855)에서도 같은 오류가 확인된다. 본문에 따르면, 오랜 세월 동안 불상과 불화가 낡고 상했으나 여력이 부족하여 9년 넘게 재화(財貨)를 모았던 상황이 서술되어 있다. 대시주[大檀信] 하은 응상(露隱應祥) 스님이 마... -
암막새와 수막새막새기와는 지붕의 처마 끝에 놓이는 수키와나 암키와에 붙이는 장식용 기와로, 처마 안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원형(圓形)·반월형(半月形)·삼각형(三角形) 등이 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유형에 변화가 많고 무늬도 매우 다양하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막새는 모두 12점이다. 연호가 있는 암막새 8점은 1589년부터 1812년까지 연호가 확인되며, 주로 17세기의 것이 많다. 수막새 4점은 명문이 확인되지 않으나, 시문된 모양으로 볼 때 연화문과 화접문은 고려시대, 범자문은 조선시대로 시기를 추... -
'은해'명 암키와편암키와편의 전면은 상·하를 나누어 상부에서는 식물무늬를 새겼으며, 하부에는 방형으로 구획한 공간에 ‘은해(銀海)’라는 글자를 새겼다. 남아있는 부분으로 미루어 볼 때 명문 좌·우에 동일한 글씨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마모 등으로 알아보기 어렵다. 결손으로 일부만 남아있어 원형을 알 수 없으나, 하단의 명문을 통해 은해사의 사명(寺名)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와편으로 추정되며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영파당대선사 진영은해사의 고승인 영파 성규(影波聖奎, 1728~1812) 스님의 진영이다. 영파 성규 스님의 일생에 관해서는 〈은해사 영파대사비(銀海寺 影波大師碑)〉(1816)와 『동사열전(東師列傳)』 「영파강사전(影波講師傳)」(1894)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스님은 서산 스님의 6세손으로 편양 언기(鞭羊彦機, 1581~1644),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함월 해원(涵月海源, 1691~1770) 스님의 법맥을 계승하였다. 또한 서예가 이광사(李匡師, 1705~1777)에게 수학하며 글씨에서도 기량으로써 찬탄과 존경을... -
해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해암 홍린(海庵洪璘) 스님의 진영이다. 해암 홍린 스님은 부휴문중의 일원으로 서악 도태(西岳道泰)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명강사였던 자암 봉초(紫岩奉璴)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에 대한 기록은 1810년 「백흥암 중흥유공기(百興菴重興有功記)」, 1829년 「은해사 거조암 대법당중수기(銀海寺居祖庵大法堂重修記)」 등 은해사와 백흥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흥암의 주지 인악 의첨(仁岳義沾, 1746~1796) 스님의 제자인 제월 성안(霽月聖崖) 스님에게 「백흥암 중흥유공기」의 글을 부탁했으며 은해사 종... -
징월당 대선사 진영팔공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행장에 관해서는 스님의 유고집인 『징월대사시집(澄月大師集)』에 남아있다. 스님은 서산 휴정 스님의 후손으로 기성 쾌선(箕城快善, 1693~1764) 스님의 4세손이자 관월 경수(冠月景修,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활동) 스님의 제자이다. 〈양종정사 도봉당 대사 유문탑비(兩宗正事道峯堂大師有聞塔碑)〉(1800)에서는 도봉 유문(道峯有聞, ?~1800) 스님의 제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징월 정훈 스님은 불문의 사표로 존경을 받았으며, ... -
전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전암 승홍(轉菴勝洪, 1785~1829 활동)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정확한 행장은 알 수 없으나 1785년부터 1829년까지 약 40여년 간 15건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전암 승홍 스님은 편양 문중의 일원으로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6~1729)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제자이다. 갑자갑계의 일원이며, 백흥암의 주지로서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에게 「백흥암 극락전 단확공덕기(百興庵極樂殿丹臒功德記)」(1818)의 글을 부탁하였... -
운악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과 기기암에 주석했던 운악 성의(雲岳性義)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이력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816년부터 1831년까지 활동이 확인된다. 1978년 형준(炯埈) 스님이 편찬한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에 따르면 스님은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스님의 6세손이며 백흥암에 진영이 남아있는 월파 달희(月坡達熙) 스님의 법을 받았다고 한다. 운악 스님은 1816년에 건립된 영파 성규(影坡聖奎, 1728~1812) 스님의 비에 은해사 종사(宗師)로 기록되어 있으며 1818년 은해사 백흥암 단청, 1... -
설허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운부암에 주석했던 설허 지첨(雪虛知添, 생몰년 미상)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 스님의 3세손으로 영파 성규(影波聖奎, 1728~1812) 스님의 제자이다. 스님의 이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797년 운부암 조실로서 단청 불사를 지휘하였으며, 〈은해사 영파대사비(銀海寺影波大師碑)〉(1816)에는 문제(門弟)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운악 성의(雲岳性義) 스님의 진영의 영찬(影讚)을 작성하였으며, 『동사열전(東師列傳)』의 「영파강사전(影波講師傳)」(1894)에는... -
도봉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 스님의 3세손이자 태허 남붕(太虛南鵬, ?~1777) 스님의 제자로 고운사의 함홍 치능(涵弘致能, 1805~1878) 스님을 가르쳤다고 한다. 스님은 1780년경 주석처를 은해사 백흥암으로 옮겨 시주(施主)를 모집하고 영산전 중창과 명부전 존상 개채, 공양소와 조사각 설치, 불화를 제작하는 등 각종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는 「백흥암 영산전 소성불보살급나한제성상기(百興菴靈山殿塑成佛菩薩及羅漢諸聖... -
팔봉당 대선사 진영은해사의 팔봉 승휴(八峰勝休)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부휴문중의 일원으로 서악 도태(西岳道泰) 스님의 4세손이자 취은 찬주(醉隱粲珠) 스님의 법을 이었다. 스님은 은해사의 〈무오갑헌토유공비(戊午甲獻土有功碑)〉(1777), 동화사의 〈함풍삼년계축삼월일동화사유공인영세불망비(咸豐三年癸丑三月日桐華寺有功人永世不忘碑)〉(1853)에 법명이 등장하며, 「은해사 중건기」(1862)에는 1847년 화재 이후 팔봉 승휴 스님이 은해사의 중창을 주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님의 진영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1... -
광월당 대사 진영은해사의 광월 관성(廣月寬誠) 스님의 진영이다. 관성 스님의 법맥은 알 수 없으나 은해사 기기암 〈아미타회상도〉(19세기), 「백흥암 극락전 단확공덕기(百興庵極樂殿丹臒功德記)」(1818)에 도감(都監)으로 법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활동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진영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119.8cm, 가로 83.0cm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광월당 대사 관성 진영(廣月堂大師寬誠眞影)’이라고 적힌 제명(題名)이 있고, 제명 옆에는 영찬(影讚)의 기록 없이 공간만 구획되... -
우운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승려인 우운 혜정(遇運慧定)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 스님의 3세손이며, 영파 성규(影波聖奎, 1728~1812)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은해사 〈영파대사비(銀海寺影波大師碑)〉(1816)를 비롯하여 「거조암 대법당 중수기(銀海寺居祖庵大法堂重修記)」(1829), 「은해사 천왕문 상량문(銀海寺天王門上樑文)」(1851) 등에서 법명이 확인된다. 스님의 진영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131.0cm, 가로 88.0cm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영찬... -
혁암당 대선사 진영은해사 승려인 혁암 영일(赫菴永日)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 스님의 5세손이며, 전암 승홍(轉菴勝洪) 스님의 제자이다. 스님에 대해서는 「백흥암 중창기(百興庵重刱記)」(1850), 은해사의 「함풍칠년을묘십이월일원문(咸豐七年乙卯十二月日願文)(1855)」, 운부암의 「불사연화(佛事緣化)」(1862년 추정), 「운부암 중건기(雲浮庵重建記)」(1862), 운부암 〈아미타회상도〉(1862), 「거조암 시주질(施主秩)」(조선 후기) 등에서 법명을 찾을 수 있다. 이 진영은 현재 은해사 ... -
백초당 대선사 진영〈백초당 대선사 진영(百草堂大禪師眞影)〉은 은해사 운부암의 「관음성상 개금기문(觀音聖像改金記文)」(1927)과 임정사 〈지장시왕도〉(1930)의 증명비구(證明比丘)으로 등장하는 백초 성우(百草聖雨) 스님의 진영으로 짐작된다. 스님은 조선시대 말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스님의 법계는 서산대사로부터 10세라고 전해지나 그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진영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크기는 세로 131.0cm, 가로 85.0cm이다. 화면 오른쪽 상단에는 ‘청허하십세 백초당 대선사지진영... -
일타 대종사의 유묵과 유품은해사 성보박물관에는 일타 대종사의 유묵과 유품이 전해지고 있다. 생전에 사용하셨던 가사(袈裟), 주장자(拄杖子), 염주(念珠), 신발(鞋), 발우(鉢盂), 다구(茶具), 붓(筆), 「선방산 지보사 대웅전 상량기(船放山持寶寺大雄殿上樑記)」, 법어(法語), 열반지(涅槃智) 등이 남아 있다. 아울러 불(佛)과 인(忍)이 쓰인 유묵과 스님의 휘호가 그려진 백자 접시와 도자기도 남아 있어 수행자로서 소박하면서 절제된 길을 걸었던 큰스님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일부(가사, 주장자, 염주, 신발, 발우, 다구, 붓, 「선방산 ... -
추사 김정희조선시대 은해사는 학승(學僧)과 문인(文人)들이 교유하는 공간이었다. 특히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친필 편액(篇額)이 다수 남아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편액은 일반적으로 건물의 이름을 걸어 놓는 표식이자 전각의 위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왕가의 인물을 비롯하여 당대의 이름난 서예가와 고승 등의 글씨가 주를 이룬다. 은해사의 혼허 지조(混虛智照) 스님이 1862년에 작성한 「은해사 중건기」와 1879년 이학래(李鶴來)가 쓴 「은해사 연혁변」의 내용을 통해서도 당시 은해사에 김정희의 편액이 남겨져 있던 ... -
천왕문 사천왕상은해사 천왕문 〈사천왕상〉은 현대에 조성된 것이며, 재질은 나무이다. 기록에 따르면 1761년 천왕문이 새롭게 건립될 당시에는 조각상이 아니라 사천왕상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은해사본말재산대장(銀海寺本末財産臺帳)』에는 ‘천왕상(天王像)’ 항목에 ‘지본채색(紙本彩色) 4위(四位)’라고 적혀 있어, 이때까지도 조각상 대신 그림이 천왕문에 봉안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전해오던 사천왕도는 지금 전하지 않지만, 금용 일섭(金蓉日燮, 1900~1975)이 1953년에 그린 《사천왕도》 4폭이... -
은해사 편액〈은해사〉 편액은 옛 천왕문에 걸려 있었다고 전하며,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혼허 지조 스님이 쓴 「은해사 중건기(銀海寺重建記)」(1862)에서는 1847년(헌종 13) 화재 이후 일어난 대대적인 재건 불사를 이야기하며, 대웅전(大雄殿), 보화루(寶華樓), 불광각(佛光閣)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밝히고 있다. 또 영천군수였던 이학래가 쓴 「은해사 연혁변(銀海寺沿革辯)」(1879)에는 절 문의 편액 〈은해사〉, 불당 〈대웅전〉, 종각 〈보화루〉, 노전(爐殿) 〈일로향각(一爐... -
일암당대선사경의탑〈일암당 대선사 경의탑〉은 은해사 승탑원 내 〈동곡당 일타 대종사 탑비〉 왼쪽에 건립되어 있다. 이 탑은 지대석(地臺石), 대석(臺石), 탑신(塔身), 개석(蓋石), 상륜(相輪)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형(方形)의 지대석 위에 8각형의 대석이 올려져 있으며, 대석은 앙련(仰蓮)을 단순화한 상대(上臺)와 복련(覆蓮)을 단순화한 하대(下臺)로 이루어져 있다. 대석의 윗면을 사각형으로 파고 탑신을 올려, 탑신이 진동에 밀려나지 않게 했다. 탑신은 앞면에 ‘일암당대선사경의지탑(一庵堂大禪師警誼之塔)’이라고 새겨져 있으며, 왼쪽 면에 ‘도... -
대웅전 편액〈대웅전〉 편액은 지금의 은해사 극락보전에 걸려 있던 편액이다. 편액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은해사 혼허 지조(混虛智照, 생몰년 미상) 스님의 부탁으로 1850년경 써준 것이다. 혼허 지조 스님이 쓴 「은해사 중건기(銀海寺重建記)」(1862)에서는 1847년(헌종 13) 화재 이후 일어난 대대적인 재건 불사를 이야기하며, 대웅전(大雄殿), 보화루(寶華樓), 불광각(佛光閣)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밝히고 있다. 또 영천군수였던 이학래가 쓴 「은해사 연혁변(銀海寺沿革辯)」(1879)에는 ... -
아미타여래좌상 복장 일괄〈아미타여래좌상〉 복장 일괄은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에서 발견된 복장물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일체여래전신사리보협진언사도합륜다라니(一切如來全身舍利宝篋眞言四道合輪多羅尼)〉, 〈원문(願文)〉으로 구성되었으며,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묘법연화경』 권제1(卷第一)의 간기(刊記)에는 ‘가정십년 신묘 유월일 경상도 영천군 공산본사 중각(嘉靖十年辛卯六月日慶尙道永川郡公山本寺重刻)’이라 기록되어 있어, 1531년(중종 25) 은해사에서 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에는 ‘발원경시주성... -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도은해사 극락보전은 〈아미타삼존도〉를 비롯하여 〈삼장보살도〉(1755), 〈칠성도〉(1953), 〈신중도〉(1977) 등 여러 점의 불화로 장엄되어 있다. 이 가운데 〈아미타삼존불상〉 뒤에 있는 후불도 〈아미타삼존도〉는 영인(影印, photoprint)하여 봉안한 것이고, 실제 작품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미타삼존도〉는 삼베(細麻布)로 세로 433.0㎝, 가로 310.0㎝의 화면(畫面)을 마련하고, 족자 형태로 장황한 작품이다. 화면에 그려진 도상(圖像)은 일반적 후불도 형식인 군도(群圖)식이 아니라 세 존상(... -
극락보전 삼장보살도은해사 극락보전 내부를 장엄한 여러 불화 중 하나인 〈삼장보살도〉는 〈아미타삼존불상〉 뒤 왼쪽에 위치해 있다. 〈삼장보살도〉는 바탕감 다섯 폭을 이어 세로 262.0㎝. 가로 294.0㎝의 화면(畫面)을 마련한 후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로 구성된 삼장보살을 중심으로 각 보살의 협시와 권속을 배치한 그림이다. 삼장보살에 대한 신앙과 명칭, 도상(圖像)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천장보살은 하늘을 관장하며 대비력(大悲力)을, 지지보살은 땅을 관장하며 지행력(智行力)을, 지장보살은 명부 세계를 관장하며 서원력(恕願... -
극락보전 칠성도은해사 극락보전 내부의 〈아미타삼존불상〉 뒤 오른쪽에는 〈칠성도〉가 봉안되어 있다. 〈칠성도〉는 치성광여래를 주존으로 북두칠성과 하늘의 여러 별들을 그린 하단 불화이다. 비단 바탕에 북극성을 여래화한 치성광여래, 일광·월광보살로 구성된 ‘치성광삼존’을 중심으로 칠여래, 칠원성군, 이십팔수(二十八宿) 등을 배치하였다. 치성광여래는 재앙을 물리치고 질병을 다스리며 득남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칠여래는 북두칠성을,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해와 달을 상징한다. 그림의 아랫부분에 적힌 화기(畵記) 첫머리에 ‘단기 4286년 계사 ... -
은해사 극락구품도·독성도〈은해사 극락구품도〉는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 아래쪽에 있는 화기(畵記)에 ‘한양개국오백칠년무술(漢陽開國五百七年戊戌)’, ‘구품탱화성우은해사묘봉암봉안우본사극락전(九品幀畵成于銀海寺妙峰庵奉安于本寺極樂殿)’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1898년(고종 35)에 은해사 묘봉암에서 그려서 은해사 극락보전에 봉안한 구품도임을 알 수 있다. 〈은해사 극락구품도〉는 아미타삼존이 극락에 태어나는 왕생자(往生者)를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화면(畫面)에 극락의 연못, 보배나무와 꽃, 새를 가득 그려 넣어 극락정토를... -
괘불도와 괘불지주괘불도(掛佛圖)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찰에서 야외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제작된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괘불도는 평소에는 나무로 만든 긴 상자(櫃)에 담겨 보관되고,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의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야외 마당에 마련된 의식 도량으로 옮겨진다. 이때 대형의 괘불도를 펼쳐 고정하고 세우기 위하여 긴 장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지주가 필요하다. 긴 장대를 괘불대(掛佛臺)라 하고 긴 장대를 고정하고 받치는 부분을 괘불지주(掛佛支柱)라고 한다. 괘불대는 주로 나무로 제작되며 ... -
고승 진영과 위패영파 대사를 비롯한 은해사 고승들의 진영 13점이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전하고 있지만, 현재의 조사전 안에는 진영 3점만 봉안되어 있다. 창건주 혜철 국사, 은해사 주지를 지내고 조실 스님으로 계셨던 동곡 일타(東谷日陀, 1929~1999) 대종사, 또 일타 스님의 은사이신 고경 법전(古鏡法典) 대종사의 진영이다. 이 진영 앞 불단 위에는 각 스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도 조사전 좌우 불단 위에는 6점의 위패가 놓여 있는데, 왼쪽은 포산당 혜인 대종사(包山堂慧印大宗師), 포운당 성진 대종사(包雲堂性眞大宗師), ... -
심검당 염불왕생첩경도은해사 심검당(尋劍堂)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는 30여년 전 도난으로 인해 행방을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 2010년 환수되어 201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염불왕생첩경도〉는 세로 160.0㎝, 가로 306.0㎝로 긴 비단 바탕에 채색한 불화이다. 불화의 화기(畵記)는 결실되었지만, 이 불화를 조사했던 1990년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의 『사찰소장불화조사(寺刹所藏佛畵調査)』Ⅱ에 “화기(畵記)는 건륭(乾隆) 15년(1750)이라는 연대만 남겨 두고 잘라져 나가 화사(畵師) ... -
소장품: 은해사 청동북 및 북걸이〈영천 은해사 청동북 및 북걸이〉는 1646년에 제작된 금고(金鼓)로서 보물로 지정된 작품이다. 금고는 금속으로 만든 악기의 일종으로 여러 사람을 소집할 때에 쳐서 울리는 기구이며, 조선시대에는 법당에 북걸이(金鼓虡)를 설치하고 봉안했다. 〈영천 은해사 청동북 및 북걸이〉 중 금고는 비교적 큰 작품으로 중앙의 당좌(撞座)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려 당좌구(撞座區), 내구(內區), 외구(外區)로 3분하였다. 당좌구에는 3중의 연꽃잎으로 당좌를 만들었으며, 내구에는 3마리의 새(鳳凰)와 구름(瑞雲) 3개를 문양으로 넣었다. 외구에는... -
소장품: 금동여래좌상은해사에 전래되는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금동으로 제작되었으며, 높이 26㎝, 무릎 폭 14.8㎝의 작은 상이다. 머리는 나발로 표현되었으며, 얕게 솟은 육계 정상에는 정상계주가 있다. 얼굴에는 살집이 있으며, 이마에 백호가 있고 반개한 눈, 코, 입이 작게 표현되었다. 목에는 삼도가 굵은 음각선으로 표현되었다. 대의(大衣)는 양어깨를 덮는 이중 착의(着衣) 방식이며, 복부에 군의 윗단이 묘사되었다. 수인(手印)은 양손 모두 손가락을 펼친 채 오른손을 가슴 앞에, 왼손을 무릎 앞으로 내민 시무외·여원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 -
소장품: 은해사 안양전·승당·관음전 신중도은해사 안양전, 관음전, 승당에 봉안되어 있었다고 전하는 신중도 3점이다. 안양전, 관음전, 승당은 현재 은해사 경내에 남아 있는 전각이 아니다. 특히 〈승당 신중도〉는 자취를 감춰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는데 최근 환수되어 조계종 총무원에서 공개된 바 있고, 〈안양전 신중도〉와 〈관음전 신중도〉는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양전 신중도 〈안양전 신중도〉는 ‘도광 11년(道光十一年)’인 1831년 금겸(錦謙, 생몰년 미상), 도운(道云, 생몰년 미상), 봉선(奉善, 생몰년 미상) 스님이 제작한 작품으로, 크기는... -
소장품: 강희52년명 소통·불패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 중인 〈강희 52년명 소통〉은 1713년에 제작되었으며, 불단(佛壇) 좌우에 올려놓는 장엄물(莊嚴物)의 일종이다. 소통(疏筒)이란 불교 의식을 할 때 다 읽고 난 발원문이나 소문(疏文)을 넣어두는 통이다. 또 발원문을 건 긴 막대기를 꽂아 놓고 뚜껑을 덮어서 보관하며, 의식을 치를 때에는 큰 스님이 기간을 정하여 발원한다. 이후 발원문을 꺼내어 부처님 앞에 고하고, 발원문에 불을 붙여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소지(燒紙)를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소통은 중앙의 긴 소통은 내부가 비어 있고 아래에 받침, 위... -
소장품: 목조 경궤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목조 경궤〉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품이다. 이 작품 안쪽 바닥에 묵서(墨書)가 남아 있는데 ‘보현산 법화사 책을 옮겨왔다(普賢山 法華寺 冊移來)’, ‘신해년 5월 25일(辛亥五月二十五日)’, ‘잃어버리지 말고 잊지말라(不失不忘)’, ‘이 궤는 법화경 48권이 들어간다(此樻法華經四十八卷入)’라는 내용이다. 보현산 법화사는 청송군(靑松郡)에 있던 사찰로 1742년에 은해사 승려 징월(澄月)이 영천시 학서산(鶴棲山) 봉림사(鳳林寺)로 옮겨 창건했다. 그러므로 보현산 법화사에서 책을 옮겨온 시기는... -
소장품: 업경대은해사 성보박물관에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업경대〉가 있다. 이 작품은 네 다리로 서 있는 사자(獅子) 위에 안장(鞍裝)이 얹혀져 있고, 그 위에 거울을 형상화한 황색 원형과 화염이 조각되어 있다. 이러한 작품을 업경대라고 하며 ‘업경륜(業鏡輪)’, ‘명경대(明鏡臺)’, ‘불영패(佛影牌)’, ‘경단(鏡壇)’ 등으로 불린다. 업경대는 일반적으로 좌대(座臺) 위에 경륜부(鏡輪部)를 올리고, 좌대와 경륜부는 간주(竿柱, 間柱)로 이어진 구조이다. 사후 명부 세계에 간 중생이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여정에서 명부(冥府)의 시왕(十王)에게... -
소장품: 불광·은해사 편액은해사 성보박물관에는 김정희 친필의 〈은해사〉, 〈대웅전〉, 〈불광〉, 〈산해숭심(山海崇深)〉 편액 등 여러 점의 편액·현판이 소장되어 있다. 이 가운데 글씨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의 글씨를 새긴 편액을 소개한다. 〈불광〉 편액 〈불광〉 편액은 평소 은해사의 혼허 지조(渾虛智照, 생몰년 미상) 스님과 깊은 교유 관계를 유지한 김정희가 혼허 스님의 부탁으로 1850년경 써 준 글씨로 알려져 있다. 이 편액은 당시 은해사 경내 있던 불광각... -
소장품: 은해사 인장·'은해'명 기와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은해사 인장〉과 〈은해명 기와〉이다. 〈은해사 인장〉 〈은해사 인장〉은 조선시대에 제작, 사용된 작품으로 공사문서(公私文書)에 날인하던 인장이다. 정방형의 인판(印板)에 굵은 테두리가 있고, ‘은해사인(銀海寺印)’이라는 네 글자를 전서(篆書)로 새겼다. 손잡이인 인뉴(印鈕)는 막대형으로 직뉴(直鈕)라고 한다. 조선시대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인장은 이와 같은 직뉴이며, 이를 모방한 것으로 짐작된다. 〈은해명 기와〉 〈은해명 기와〉는 암키와에 ‘은해’라는 사찰명이 찍혀있다. 은해사는 다수의 화재로... -
오층석탑은해사 성보박물관 앞뜰에는 오층석탑이 건립되어 있다. 현대에 제작된 작품으로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반영해 제작했다. 지대석 위에 하층기단(下層基壇), 그 위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조각한 상층기단(上層基壇)이 있으며, 다시 그 위에 5층의 탑신(塔身)과 상륜(相輪)이 올려져 있다. 1층 탑신 사방에는 불상을 새겨 놓았다. 탑의 주변에는 돌난간을 둘러놓았다. -
기기암 신중도201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은해사 〈기기암 신중도〉이다. 이 작품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 기기암 인법당에는 1969년에 제작된 〈신중도〉가 봉안되어 있다. 〈신중도〉는 불법을 지키는 여러 선신(善神)을 그린 불화이다. 〈기기암 신중도〉는 총 20위의 선신을 그렸다.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을 중심으로 화면(畫面) 왼쪽에 대범천왕(大梵天王), 오른쪽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을 배치하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 위태천신(韋䭾天神)을 배치한 구도이다. 이 4위(位)의 존상은 옆에 방제(傍題)가 달려 있어 정... -
운부암 원통전 금동보살좌상운부암 원통전의 주존은 관음보살상으로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목조 수미단 위에 마련된 유리보호관 내에 봉안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좌상〉 뒤편에는 1862년에 제작된 후불도 〈아미타회상도〉가 걸려 있고, 원통전 오른쪽 벽면에는 1979년에 제작된 〈지장시왕도〉와 〈신중도〉가 있다. 이외에도 〈목조 위패〉, 〈동종〉 등의 의식구와 범음구가 전각 내에 갖추어져 있다.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보살좌상〉 원통전의 주존인 〈금동보살좌상〉은 금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상 높이 100㎝, 무릎 폭 57㎝이다. 이 상은 복장물이나 기... -
운부암 아미타회상도운부암의 불화는 현재 운부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회상도〉(1862), 〈지장시왕도〉(1979), 〈신중도〉(1979)와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운부암 아미타회상도〉(1862),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운부암 지장시왕도〉(1747) 5점이 전한다. 이 중 1862년 같은 해에 제작된 두 점의 운부암 〈아미타회상도〉를 소개한다. 운부암 원통전 〈아미타회상도〉 운부암 원통전 〈관음보살좌상〉 뒤편 후불벽에 유리를 끼운 액자 형태로 걸려 있는 작품이다. (재)불교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크기는 세로 219.8... -
운부암 지장시왕도·신중도운부암 관련 불화는 현재 5점이 전한다. 이 가운데 〈아미타회상도〉(1862), 〈지장시왕도〉(1979), 〈신중도〉(1979) 3점은 현재 운부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운부암 아미타회상도〉(1862)은 은해사 성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운부암 지장시왕도〉(1747)은 도난당했다가 되찾았다. 운부암 원통전 〈지장시왕도〉와 〈신중도〉 운부암 원통전 내부 오른쪽 벽에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이 〈지장시왕도〉와 〈신중도〉는 불화 하단의 화기를 통해 같은 사람들에 의해 1979년 함께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지...
더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