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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불도와 괘불지주

괘불도(掛佛圖)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찰에서 야외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제작된 의식용 대형 불화이다. 괘불도는 평소에는 나무로 만든 긴 상자(櫃)에 담겨 보관되고, 영산재(靈山齋)나 수륙재(水陸齋) 등의 불교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야외 마당에 마련된 의식 도량으로 옮겨진다. 이때 대형의 괘불도를 펼쳐 고정하고 세우기 위하여 긴 장대와 이를 지지하기 위한 지주가 필요하다. 긴 장대를 괘불대(掛佛臺)라 하고 긴 장대를 고정하고 받치는 부분을 괘불지주(掛佛支柱)라고 한다. 괘불대는 주로 나무로 제작되며 괘불지주는 돌로 제작되어 전각 앞에 세워지지만, 재질의 특성상 나무로 만든 괘불대는 파손되거나 없어지고, 돌로 제작된 괘불지주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은해사에는 괘불도와 괘불궤(掛佛櫃)뿐만 아니라 괘불대와 괘불지주도 남아 있다. 현재 은해사의 극락보전 내부에는 실제보다 작은 크기로 영인(影印)한 〈괘불도〉의 사진이 오른쪽 벽면에 걸려 있으며, 극락보전 외부의 뒤편과 앞에는 〈괘불대〉와 〈괘불지주〉가 있다. 〈괘불도〉와 〈괘불궤(掛佛櫃)〉는 은해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은해사 괘불도
〈은해사 괘불도〉는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건륭십오년경오사월일(乾隆十五年庚午四月日)’인 1750년, 보총(普總, 생몰년 미상), 처일(處一, 생몰년 미상) 스님이 제작하였다. 크기는 세로 1,165.4cm, 가로 554.8cm이며 약 60.0cm 내외의 비단 9매를 이어서 바탕재를 마련하였다. 괘불도에 사용된 직물은 누에고치에서 뽑힌 가늘고 굵기가 비교적 일정한 얇고 투명한 비단으로,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에도 사용되었던 특수재질의 고급 비단이다. 〈은해사 괘불도〉는 홀로 서 있는 부처를 그린 간결한 형식이다. 화면(畫面)의 중앙에 당당한 신체의 본존은 붉은색 바탕에 금박을 붙인 가사와 녹청색의 복견의(復肩衣), 연두색의 치마를 입고 연꽃을 밟고 서 있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가슴 앞에 두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본존의 좌우에는 6마리의 극락조와 산화(散華)하는 모란꽃과 연꽃을 대칭으로 장엄하였고, 상부에는 천개(天蓋)를, 하부에는 연꽃이 피어오르는 연지(蓮池)를 배치하였다. 〈은해사 괘불도〉는 화면의 하부를 제외한 3면 회장(回裝)에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 ‘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등 13개의 진언을 총 81자의 범자(梵字)로 기록하였다. 또한 진언은 후배지에도 3열에 걸쳐 적혀있다. 화면을 따라 범자를 기록한 불화는 17~18세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의식집의 간행과 야외 의식의 활성화에 기인한 것으로 불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괘불도 화기(畵記)
乾隆十五年庚午 四月日 畵貟 普總 畵貟 處一
괘불궤
〈괘불궤〉는 길이 599.8cm, 높이 37.7cm, 너비 39.2cm, 무게 120kg으로 옻칠한 나무판 여섯 개로 만들었다. 각 면은 감잡이와 쇠못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었으며 측면에는 잠금을 위한 자물쇠와 궤를 들기 위한 고리 등이 달려 있다.
괘불대와 괘불지주
은해사 극락보전 뒤편에는 12.0m 정도 높이의 〈괘불대〉와 이보다 다소 짧은 두 개의 〈괘불대〉가 놓여 있다. 괘불대의 아래쪽에는 〈괘불지주〉에 고정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은해사 〈괘불지주〉는 높이가 150.0㎝ 정도이며, 은해사 극락보전 앞에 좌우 두 점씩 쌍을 이루어 세워져 있다. 자연석을 가공하여 윗면을 둥글게 깎았으며, 중앙에는 〈괘불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원형의 구멍이 위아래 하나씩 뚫려 있다. 한쪽 면에는 ‘계해팔월일조성(癸亥八月日造成)’이라고 새겨진 명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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