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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갑수공비

〈무오갑 수공비〉는 무오갑계(戊午甲契)에서 은해사에 바친 땅과 시주에 대한 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787년에 건립한 비석이다. ‘무오갑계’란 무오년(戊午年)에 태어난 동갑들이 맺은 계이다. 이 비석은 은해사 승탑원의 2열 비석군(碑石群) 중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에 건립되어 있으며, 원수방부(圓首方趺) 형태로 비석의 앞면과 뒷면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측면에 ‘은해사’라고 큰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하다. 비신 앞면의 상단에 ‘무오갑수공비(戊午甲樹功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문은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이 지은 것으로 『인악집(仁嶽集)』에 「은해사무오갑수공비(銀海寺戊午甲樹功碑)」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비문의 내용을 보면 은해사 무오갑계(戊午甲契)는 앞서 이미 헌토(獻土)한 바 있으며, 그 뒤에도 법당 동북쪽 모퉁이에 있는 원림(園林)을 사서 보시했다. 무오갑계 덕분에 사찰 보수에 사용할 돈이 넉넉하다고 한다. 갑계의 인원은 90여 명이 넘지만, 거연(巨演), 대연(大演), 유영(宥瑛), 교민(敎敏)의 공이 특히 크기에 옥돌에 새겨 뒤에 권면하고자 한다며 전 주지 체주(體周) 스님이 인악 의첨스님에게 비문을 의뢰한 것이다. 비문 끝에 ‘성상십일년정미오월일 립(聖上十一年丁未五月日立)’이라는 비석 건립 연대와 ‘인악당 의첨 찬(仁嶽堂 義沾 撰)’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헌토백두가일천오십냥(獻土百斗價一千五十兩)’, ‘운판가문이십팔냥(雲板價文二十八兩)’, ‘양산가사십칠냥(養山價四十七兩)’, ‘사보용전백냥(寺補用錢百兩)’이라고 새겨, 헌토, 운판, 양산의 비용과 사찰 보수 비용 모두 돈으로 납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신의 뒷면에는 무오갑계의 명단인 ‘갑회질(甲會秩)’에 도감(都監) 통정(通政) 유영(宥瑛), 인곡 취운(仁谷翠芸), 남월 계인(南月戒仁), 통정 거연(巨演), 가선(嘉善) 두안(斗安), 가선 대연(大演) 등 스님들의 명단과 시승통(時僧統) 통정 거연, 전승통(前僧統) 도감 통정 체주(體周) 등 은해사 소임 스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비석은 18세기 후반 은해사의 사찰 재정 및 갑계의 운용, 은해사를 근거로 활동했던 스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더불어 비신 뒷면의 글씨에 붉은 안료(顔料)가 남아 있는데, 조선시대 비석 제작 방법 중 전홍(塡紅)이 남아 있는 귀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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