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천왕문 〈사천왕상〉은 현대에 조성된 것이며, 재질은 나무이다. 기록에 따르면 1761년 천왕문이 새롭게 건립될 당시에는 조각상이 아니라 사천왕상 그림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은해사본말재산대장(銀海寺本末財産臺帳)』에는 ‘천왕상(天王像)’ 항목에 ‘지본채색(紙本彩色) 4위(四位)’라고 적혀 있어, 이때까지도 조각상 대신 그림이 천왕문에 봉안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전해오던 사천왕도는 지금 전하지 않지만, 금용 일섭(金蓉日燮, 1900~1975)이 1953년에 그린 《사천왕도》 4폭이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전하고 있어, 이러한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대신 조각상으로 조성된 사천왕상은 천왕문 양 협칸에 각 2구씩 봉안되어 있다. 천왕상은 각기 바위에 앉아 있는데, 각 상의 다리 아래에는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작은 악귀가 있다. 각 상은 갑옷과 천의를 걸쳤으며, 머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을 썼다. 이들은 각각의 방위를 상징하는 칼, 보주, 탑, 창, 비파 등의 지물을 들었는데, 1953년 금용 일섭이 그린 《사천왕도》의 지물과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을 참고로 하면, 현재의 배치는 입구를 기준으로 좌측이 북방 〈다문천왕〉과 서방 〈광목천왕〉, 우측이 동방 〈지국천왕〉과 남방 〈증장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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