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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당 대선사 진영

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은 편양문중 환성 지안(喚醒 志安, 1664~1729) 스님의 3세손이자 태허 남붕(太虛南鵬, ?~1777) 스님의 제자로 고운사의 함홍 치능(涵弘致能, 1805~1878) 스님을 가르쳤다고 한다. 스님은 1780년경 주석처를 은해사 백흥암으로 옮겨 시주(施主)를 모집하고 영산전 중창과 명부전 존상 개채, 공양소와 조사각 설치, 불화를 제작하는 등 각종 불사를 주도하였다. 이는 「백흥암 영산전 소성불보살급나한제성상기(百興菴靈山殿塑成佛菩薩及羅漢諸聖像記)」(1786)와 백흥암 〈감로왕도〉(1792) 등의 기록에서 스님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화엄교학(華嚴敎學)에 해박하여 의상(義湘, 625~702) 스님의 〈법성게〉를 재해석한 『대방광불화엄경법성게과주(大方廣佛華嚴經法性偈科註)』를 저술하였으며, 「백흥암 중흥유공기(百興庵中興有功記)」(1810)을 통해 백흥암에 머물렀던 3대 선사이자 강주(講主)로 이름이 높았다. 스님이 입적한 후 스님의 진영은 은해사, 은해사 백흥암, 운문사에 모셔졌다. 은해사에 모셔진 스님의 진영은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세로 121.2cm, 가로 80.0cm로 화면 왼쪽 상단에는 ‘양종정사 도봉당 대선사지진(兩宗正事道峰堂大禪師之眞)’이라고 적힌 제명(題名)이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영찬(影讚) 없이 공간만 구획되어 있다. 화면은 벽면과 바닥면으로 구분하여 벽면은 녹색 바탕에 칠보문을 가득 채우고, 바닥면은 문양이 있는 화문석을 묘사하였다. 스님은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사천왕첩이 표현된 적색의 가사와 푸른색의 장삼을 입고 손에는 염주와 주장자를 들고 있다. 진영 속 스님은 머리의 정수리 부분이 볼록 솟아 있는데 이는 은해사뿐만 아니라 은해사 백흥암과 운문사 진영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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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당 대선사 진영(은해사성보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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