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백흥암에 주석했던 전암 승홍(轉菴勝洪, 1785~1829 활동) 스님의 진영이다. 스님의 정확한 행장은 알 수 없으나 1785년부터 1829년까지 약 40여년 간 15건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전암 승홍 스님은 편양 문중의 일원으로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6~1729) 스님의 4세손이자 백흥암의 도봉 유문(道峰有聞, ?~1800) 스님의 제자이다. 갑자갑계의 일원이며, 백흥암의 주지로서 징월 정훈(澄月正訓, 1751~1823) 스님에게 「백흥암 극락전 단확공덕기(百興庵極樂殿丹臒功德記)」(1818)의 글을 부탁하였다. 인악 의첨(仁嶽義沾, 1746~1796) 스님의 문인이면서 부도암, 백흥암, 거조암, 기기암 등에서 행적이 확인된다.
스님의 진영은 세로 122.3cm, 가로 78.8cm이며 현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배경은 벽면과 바닥면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바닥면에는 문양이 있는 화문석이 깔려 있다. 화면 왼쪽 상단에는 묵서로 ‘양종정사 전암당 대선사 지진(兩宗正事轉菴堂大禪師之眞)’이라고 적힌 제명(題名)이 있고,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 영찬(影讚)에는 기록 없이 공간만 구획되어 있다. 스님은 가부좌를 하고 화면의 오른쪽을 향해 앉아 있으며 사천왕첩이 표현된 적색의 가사와 푸른색 장삼을 입고 손에는 주장자와 염주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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